소명 받은 사람만 부모가 되어야 할까. ‘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울 책무가 있는 부모가 운다고, 오줌 싼다고 자식의 생명을 멸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니 유전자 조작으로 신인류라도 탄생한 것일까. 자식에게 험한 욕을 할망정 속내 깊은 사랑이 뜨거워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조건적인 희생을 했던 지난 세대 부모의 DNA는 다 어디로 갔는가.
우둔한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현미경으로 살피지만 지혜로운 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사랑의 망원경으로 본다고 했다. 엄마. 늘 들릴 만한 곳에 있다가 부르면 달려와 바로 안아 줄 친엄마가 원영이 곁에는 없었다. 가여운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기는커녕 비뚤어진 마음으로 아이의 실수에 집착하고 다그치는 계모 앞에서 엄동설한에 차가운 욕실 바닥으로 내몰려 어른도 참기 힘들었을 온갖 고문을 당했으니, 아이에게도 자기보호본능이 있었겠지만 그 상황이라면 어떤 아이가 숨을 쉬고 살 수 있겠는가. 소중한 생명을 만만한 꼭두각시 조형물처럼 맘대로 조몰락거리다 여린 빛을 억지로 꺼버리다니.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니 아이가 아이답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가정을 이끌 부모의 자리를 택했을까. 아이의 때에 맞는 행동과 자리가 있는데 도대체 그 부모는 어떤 아이를 원했던 것일까. 약자 앞에 선 강자로 악마의 짓을 행하다니. 이제 그 악은 부메랑이 돼 불량부모가 고통을 당할 차례인가.
부모는 자녀를 축복하기 위한 준비된 그릇으로 미래를 기대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가장 좋은 스승이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좋은 것으로 채워주고자 노력하는 존재다. 올곧게 자란 아이를 키워낸 부모는 그만큼 세상에 기여한 것이고 성공한 투자를 한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낙원인 가정이 짐승보다 못한 시시한 인간들 때문에 무너지다니. 좋은 부모, 좋은 자녀는 완성품도 기성품도 아니다. 성장해 세상에 어떤 빛을 발할지 모를 아이를 위하여 계속 배우고 노력하며 성장해가는 상호보완의 관계가 아닐까.
김세원(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6-03-15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