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서 여심(女心)을 흔드는 남자 주인공 스펙이 달라졌다. 젊고 늘씬한 미남 대신 좀더 현실감 있는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세다. 그래서일까.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폭넓은 연기가 가능한 40대 남자 배우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 tvN '시그널' 조진웅(40), KBS '아이가 다섯' 안재욱(45), MBC '결혼계약' 이서진(45), tvN '피리 부는 사나이' 신하균(42) 등 잘 나가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모두 40대다. 도대체 이들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폭넓은 연기로 입체적 캐릭터 창조=화제 속에 최근 종영한 ‘시그널’의 조진웅은 이 드라마를 통해 주연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 힘없는 피해자와 억울하게 누명을 쓴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포기할 줄 몰랐던 강직한 형사 이재한 역을 소화해내며 ‘재한 선배님’ 신드롬을 불렀다.
조진웅은 1989년 20대 초반 이재한부터 2016년 40대 중년의 이재한까지 세월을 넘나들었다. 20대 이재한이 첫사랑을 잃고 혼자 극장에서 오열하는 장면, 30대 이재한이 후배 여형사 차수현(김혜수) 대신 능청스럽게 국회의원에게 커피를 타주거나, 피해자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유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 마지막 40대 이재한의 강렬한 눈빛 연기까지 한 캐릭터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가히 조진웅의 재발견이라 할 만 했다.
시청률 30%를 넘보고 있는 ‘아이가 다섯’은 젊은 시절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이었던 안재욱의 중년 버전이다. 다만 재벌 2세 ‘실장님’이 아니라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마케팅팀장’이라는 현실적인 직책을 맡았다. 20∼30대의 안재욱과 크게 다른 점이다.
안재욱이 연기하는 이상태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도 장인·장모를 모시고 살며 두 아이를 키우는 따뜻하고 착실한 37세 가장이다. 이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는 같은 팀 안미정 대리(소유진)와 현실적인 재혼 로맨스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나이도 들었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됐지만 안재욱과 소유진의 로맨스는 풋풋하다. 재혼 로맨스의 설렘 포인트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안재욱의 노련한 연기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이서진은 ‘결혼계약’에서 17살 어린 유이와 멜로를 보여줄 예정이다. 신데렐라 드라마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 ‘본부장님’으로 등장한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본부장을 맡은 배우의 나이다. 예전 드라마 공식대로라면 파격적으로 젊은 본부장이 여주인공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줬겠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본부장이 현실적인 나이를 찾았다.
장르물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신하균도 어느 새 마흔을 넘겼다.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협상 전문가에서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이후 위기협상 전문가로 전환하는 독특한 인물을 연기한다. 지독한 냉정함, 협상가의 능수능란함,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노련한 모습까지 단 2회 만에 혼을 빼 놓는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20∼30대 N포 세대, 드라마 주인공에서 밀려난 현실 반영=40대 배우가 안방극장 주인공을 차지한 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드라마는 세태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20대 삶이 워낙 팍팍하다보니 20대 배우가 만들어낼 만한 이야기의 폭 자체가 좁다. 20대가 주인공이 되려면 ‘미생’의 장그래(임시완)처럼 N포 세대의 팍팍한 현실을 보여주거나,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서진우(유승호)처럼 비현실적인 천재가 등장하는 식이다.
40대 배우는 캐릭터에 다양성과 현실성을 불어넣어주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변호사 연기를 하지만 20대 유승호가 보여줄 수 있는 것과 tvN 새 드라마 ‘기억’의 주인공을 맡은 이성민(48)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지평은 다르다.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도 가능한 40대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은 제작진부터 시청자에게까지 신뢰를 주기도 한다. 한 드라마 작가는 “40대 배우의 ‘너무 잘생기지 않은 얼굴’도 제작진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지고, 배우의 연기력으로 충분히 외모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실력이 검증된 40대 배우들을 계속 찾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멜로에서 장르물까지 안방극장 ‘점령’ 40대 대세 꽃중년들
입력 2016-03-1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