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개인정보 수백만건 檢·警 등에 넘겼다

입력 2016-03-15 04:00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검찰과 경찰에 개인정보 110만여건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부터 5년 동안 무려 550만여건을 제공했다. 국회는 건보공단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제공을 규제하기 위해 지난해 초부터 법 개정을 준비했다. 하지만 총선이 다음 달로 다가온 터라 19대 국회에서는 법 개정이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이 문제에 관해 부처 간 협의를 요구했지만 법무부 경찰청 국가정보원은 응하지 않고 있다.

◇민감한 의료정보도 수사기관에 제공=더불어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14일 건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검찰에 15만6445건, 경찰에 94만5496건 등 110만1941건의 개인정보를 제공했다. 건보공단은 수사기관이 수사 목적으로 가입자 등의 개인정보를 요청할 경우 내부지침에 따라 이를 제공하고 있다. 2011∼2015년 556만6263건을 제공했다.

건보공단이 제공한 자료 가운데 병원 이용기록과 병명이 있는 ‘요양급여’ 자료가 상당수다. 2014년 건보공단이 검·경에 제출한 71만여건 중 19만5000여건이 요양급여 자료였다. 직장·연락처·소득·재산 등 정보뿐 아니라 민감한 질병 정보도 수사기관이 쉽게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의원은 지난해 2월 압수·수색영장이 있을 때만 건보공단이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케 하자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도 개인정보 제공 후 10일 안에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게 하는 개정안을 냈다. 금융기관은 이미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할 경우 이를 당사자에게 10일 이내에 알려주고 있다.

◇“법무부, 협의에 응하지 않는다”=국회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은 두 의원의 법안을 검토해 지난해 5월 수정안을 제시했다. 전문위원실은 검토보고서에서 “의료정보 제공에 한해 영장주의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경이 건보공단에서 질병 관련 정보를 제공받으려면 사전영장을 제시하게 하자는 얘기였다. 또 사후통보 기간은 신용정보회사가 수사기관에 정보를 제공했을 때 적용하는 ‘60∼180일’을 참고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된 뒤 진척이 없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법무부 등이 관련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창준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장은 소위 회의에서 “영장주의를 적용하기 위해 논의하자고 요구했는데 수사기관이나 법무부에서는 현재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일체의 개정 방식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며 “부처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강도태 건강보험정책국장은 “(법무부 경찰청 국정원 등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내왔다”고 했다.

이렇게 반대하는 이유는 당사자가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취득 사실을 알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용익 의원은 “당장 알려주자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이후 알려주자는 것”이라며 “금융정보 이용도 통보하는데 질병정보 이용을 통보하지 않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