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개혁’이라 하고, 다른 쪽은 ‘개악’이라 한다.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을 놓고 의견은 갈려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파견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노동 4법’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10일 막을 내린 임시국회에서도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4·13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열릴지도 불투명하다.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업무 확대를 골자로 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형·용접·주조 등 ‘뿌리산업’에서도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다. 지금은 운전·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허용된다.
노동 4법 중 파견법을 놓고 정부·여당과 노동계·야당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파견근로자도 퇴직금을 받게 해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가늠하려면 ‘파견의 풍경’을 짚어봐야 한다.
불법 만연한 파견
이모(32)씨는 경기도 안산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한다. 주야 2교대로 휴대전화 케이스를 만든다. 지난해 2월 그가 ‘○○인력개발’이란 간판이 달린 사무소에 찾아갔을 때 사장은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쉬운 일’이라고 소개했다. 초보자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크게 틀린 말은 없다. 주말은 잊어야 한다든지, 연차 같은 건 언감생심이라는 말은 입 밖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벌써 세 번째 근로계약서예요.” 이씨는 지난달 세 번째 파견근로계약서를 썼다. 출퇴근하는 곳은 그대로인데 소속된 파견업체만 달라졌다. 아니, 근로계약서를 건넨 사장도, 작성한 사무실도 그대로인데 업체명만 바뀌었다. 파견업체 사장은 이름만 다른 여러 파견업체를 운영한다.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은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다. 단, 임시·간헐적 사유만 있으면 최장 6개월 파견이 허용된다. 6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면 평생 파견근로자로 남을 수 있다.
이씨는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면서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용업체에서 파견업체로 나오는 4대 보험료를 파견업체와 나누기로 했다. 그러면 매달 10만원가량 더 벌 수 있다. 파견업체는 월급의 10% 정도인 수수료 외에도 이런 식으로 가외수입을 올린다. 이런 사정이니 파견업체만 늘고 있다. 파견이 처음 허용된 1998년 789곳이던 파견업체는 2014년 2468곳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이씨는 지방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9급 공무원을 준비하다 포기했다. 자연스레 공단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와 같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파견업체에 적을 둔 파견근로자이고, 셋 중 하나는 아시아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이씨는 “인력사무소에 출근해 일을 기다릴 때보다는 안정적이라 낫다. 파견법이 어찌되든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규직 같은 ‘근사한 일자리’는 비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일자리 늘어난다는데
정부·여당은 파견법이 개정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퇴직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55세 이상 고령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에게도 활로가 열린다고 주장한다.
파견법 개정이 뿌리산업에 힘을 실어줄 거란 전망도 있다.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지만 영세한 규모와 3D(더럽고 어려우며 위험한) 업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인력난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뿌리산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고 10인 미만 사업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뿌리산업에 파견이 허용되면 매년 일자리 1만3000개가 창출된다고 예측했다.
정말 파견이 허용되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까. 현장에선 다르게 본다. 인천의 한 금형제작업체 최모(65) 사장은 “일은 힘들고 월급이 적어 젊은 사람들은 정규직 시켜준다고 해도 안 오는데 파견을 허용해도 소용없다”면서 “원청업체에서 납품단가를 현실화해야 사람도 뽑고 월급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일자리가 늘더라도 질 낮은 일자리만 늘어나리란 우려도 있다. 지난달 경기도 부천과 인천의 대기업 휴대전화 협력업체 근로자 5명이 메틸알코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모두 20대 청년이고, 파견근로자였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정부·여당은 파견법 개정되면 일자리 늘어난다는데… 파견 근로의 살풍경
입력 2016-03-15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