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곰곰 새겨봐야 할 김종인의 질주

입력 2016-03-14 18:03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5번기 바둑 대결만큼은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는 요즘 ‘김종인의 질주’가 화제다.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변화를 대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된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친노-비노 내홍에 절고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빈사상태에 이르렀던 정당이었다. 4·13 총선 패배는 기정사실화된 듯 보였다. 하지만 지지도가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국민의당 창당 직후인 지난 1월 11∼15일 실시한 조사에서 더민주의 지지도는 22.5%였다. 국민의당 20.7%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주 여론조사에서는 더민주가 29.1%로 국민의당 10.8%를 압도했다.

지지도뿐 아니라 제1야당의 실제 영향력도 빠르게 복원됐다. 추가 탈당에 관한 흉흉한 소문에 전전긍긍하던 연말연초와 달리 정국 전반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했다. 더민주는 새누리당이 공천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국민의당이 창당 준비에 분주하던 때 고졸 출신 삼성전자 전직 상무를 비롯한 총선후보 영입 결과를 잇따라 발표해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이후 공천 과정에서 20명이 넘는 현역 의원을 탈락시켰다. 비대위원장을 두 차례나 지냈던 문희상 의원과 친노 좌장인 이해찬 의원 같은 거물에까지 ‘가차 없는 칼’을 휘두름으로써 안철수 신당으로 향하던 관심의 물길을 틀었다.

이뿐 아니다. 오랜 논란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던 북한인권법을 선거구 획정안과 함께 마무리 지었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이후 전개된 필리버스터의 탄력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재빨리 국면을 전환하며 정국을 주도적으로 끌고 갔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있다.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그는 햇볕정책 업그레이드론을 폈고, 야당의 전통적 우군인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조를 향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야당 통합론을 제기해 국민의당을 분열시키는 ‘신수’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로 화제를 집중시키고 있다.

그의 판단은 상당히 객관적이며 상식적이다. 정치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치인보다 일반 국민에 더 가까워 쉽게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그의 능력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정파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부채가 없다. 권력에 대한 의지도 강해 보이지 않는다. 기존 조직이 반발하면 언제라도 나가겠다는 태세지만 그를 쓰는 이가 굳이 내보낼 이유가 없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이념보다 실용주의에 가깝다. 조직을 끌어가는 방식도 정치인이라기보다 정치공학자에 근접해 보인다.

기성 정치인들은 ‘김종인식 개혁’에 대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라거나 ‘지향점 없는 대증적 요법’이라고 비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선거가 끝나면 용도폐기될 일회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제1야당 바꾸기는 그동안 야당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며 탈당한 야당 개혁 세력도 결국 실패했던 목표라는 점을 기성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 계파 이익에서 자유롭지 못해 무엇을 해도 ‘사천(私薦)’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는 새누리당은 김종인식 공천의 비교우위를 눈여겨봐야 한다.

눈길을 끄는 다른 한 가지는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다. 김 대표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지방에 내려가 침묵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인기는 상승일로다. 반면 야권통합을 두고 김 대표와 설전을 벌였던 안철수 대표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부작위와 불간여가 더 지지를 받는 아이러니가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총선 공천과 같은 중대 사안도 외부에 짐을 맡겼을 때 오히려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차기 대권 주자들이 유념할 대목이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