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스탈린의 조용한 부활… 스탈린, 젊은층에 새 영웅 부상

입력 2016-03-14 21:21

‘공포정치’로 수백만명을 희생시킨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사진)이 러시아에서 부활하고 있다.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역사 세탁’과 경제난·부패에 지친 러시아인들의 염증이 이러한 현상을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소재 레바다센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40%가 ‘스탈린 통치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것보다 많다’고 응답했다. 이는 4년 전에 비해 13%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1월 이 센터의 연례조사에서는 52%가 스탈린이 “확실히” 혹은 “아마도” 러시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금은 군소정당인 러시아 연방공산당 지부 곳곳에는 스탈린의 흉상이 세워지고, 선물 가게에는 스탈린 기념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13일 뉴욕타임스(NYT)에 ‘러시아의 새 영웅, 스탈린’이라는 칼럼을 기고한 알렉 런은 인터뷰에서 “스탈린은 위대한 인물”이라거나 “언론에서 말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러시아 고교생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모스크바 한 학교의 역사교사인 알렉산드르 드라클러는 “스탈린 치하의 여러 암울한 사건들이 한심할 정도로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1991년 소련연방 해체 직후 스탈린은 물론 소련의 국부로 추앙됐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까지 혐오의 대상이 됐던 것과 격세지감이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때 조직된 ‘정치억압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레닌과 스탈린 치하에서 1500만명의 소련인이 감옥이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스탈린 치하에서 아사하거나 정치적 탄압으로 희생된 사람이 최소한 수백만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스탈린의 ‘조용한 복권’에는 2000년 집권한 푸틴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그는 서구의 개인주의에 대응해 집단주의의 우위를 강조하고, 냉전시기 초강대국 소련의 영광을 부각하며 민족주의 감정을 고취해 왔다. 이에 따라 공포정치로 인한 스탈린 치하의 막대한 인명 피해는 경시하고, ‘대애국전쟁’이라 불리는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끈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스탈린을 색칠하고 있다.

저유가 장기화로 심화되는 경제난과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실망과 피로감도 구소련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부패한 관료들은 예산을 훔치고, 경찰은 공공연히 뇌물을 요구하며 판사들도 매수되는 현실에서 러시아인들이 그나마 ‘질서’가 있던 과거가 나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경제난에 몰린 러시아인들이 은행과 크렘린궁 앞에서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일이 늘고 있다면서 이는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