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어라 돼지’ 펴낸 김혜순 시인 “돼지를 통해 몸 다루는 방식 비판하고 싶었다”

입력 2016-03-14 20:50
11번째 시집 ‘피어라 돼지’를 낸 한국 여성 시인의 대모로 불리는 김혜순 시인. 표제시를 비롯한 15편의 연작시로 ‘돼지라서 괜찮아’라는 장시를 썼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재판도 없이/ 매질도 없이/ 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피어라 돼지’ 중)

“고개를 들어본 적 없는 예예 돼지, 밤하늘 드넓은 궁창을 우러르기만 해도 무서워 뒈져버리는 돼지다. 뒈지는 돼지는 돼지라고 생각하는 뒈지는 돼지다. (중략) 나는 지금 벽 앞에 앉아 꿀꿀거리는 돼지 기분이에요.”(‘뒈지는 돼지’ 중)

언어와 이미지의 파편이 오버랩되고 충돌한다. 격랑을 만들어내고 회오리치기도 한다. 비장한 반성이 있는가 하면 유쾌한 조롱이 있다. 유명 시구절도 거침없이 차용해 쓱쓱 섞어버린다.

한국 여성 시인의 대모로 통하는 김혜순(61) 시인의 신작 시집 ‘피어라 돼지’(문학과지성사·표지)는 약자들을 위한 한 편의 광시곡을 듣는 것 같다. 그는 “상상적 언술의 최극단으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끊임없이 갱신해 왔다. 너덜너덜해진 우리 삶과 사회를 때로는 조롱과 유머로, 때로는 격렬한 아픔으로 통과하며 시를 ‘가동’한다”고 평가를 받는다.

확실히 그는 시를 가동하는 시인이다. 일상에 뿌리를 대고 있지만 산문과 다를 바 없는 시는 거부한다. 그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상의 에피소드요? 그게 분명히 드러날 거면 산문을 쓰는 게 낫다. 시에는 상상적 경험이 들어가야 한다”며 “그래서 현실에서 쓰는 언어와 다른 게 시이며, 내가 바다라고 했을 때 그 바다는 현실에서 쓰는 바다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표제시 ‘피어라 돼지’는 장시 ‘돼지라서 괜찮아’를 구성하는 총 15편의 연작시 가운데 한 편이다. 2001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들에 관한 시다.

그는 “구제역 얘기가 아니라 사람의 몸이나 동물의 몸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한 것”이라며 “국가 혹은 우리 인간이 타인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시선으로 재단해 왔는가를 되묻는 시”라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이 돼지판 홀로코스트 앞에서 육체, 벌거벗음, 죽음, 시 쓰기, 사랑, 권력, 여성성, 문명, 구원, 신화와 같은 수많은 테마가 집약된 한 편의 장시가 탄생하게 됐다.

시가 사회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시에서 “내가 이 세상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가는 춤을 추는 중”이라고 한 것처럼. 그는 다만 “다른 방식으로, 시라는 구조를 얹어서 비판해야 하며 그것이 시적 저항이자 시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김혜순의 시는 리듬이 강하다. 비결이 뭘까. 그는 “퇴고를 잘 안 한다. 그러다보면 리듬이 죽는다”면서 “내 시는 몸속에서 나오는 시다. 몸속에서 언어를 굴리고 있다가 꺼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의미가 켜켜이 쌓인 자신의 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시는 각자의 그릇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달리 읽힙니다. 자기가 든 그릇으로 우물에서 시를 퍼가는 거지요.”

1979년 등단해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