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정신노동까지 대체… 인간 고유영역은 감정뿐?

입력 2016-03-13 21:26 수정 2016-03-13 22:14
이세돌 바둑 9단이 네 번째 대국에서 인공지능(AI) 알파고에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알파고는 5판 중 3판을 내리 따내며 일찌감치 ‘인간에 대한 AI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 9단이 세 번 잇따라 불계패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산업혁명 이후 300년 만에 찾아온 기계의 승리. 알파고의 승전보로 ‘AI 혁명’은 시작된 것일까.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인류를 ‘대체’할 수 있을까.

통제와 긴장, 갈등의 역사

인류 역사에서 인간과 기계는 통제와 긴장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농경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기계를 통제했다. 기계는 도구 혹은 연장에 불과했다. 통제는 절대 우위를 의미한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계는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에서 기계로 생산수단이 이동하며 기계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정보화, 정보산업의 발달은 인공지능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낳았다. 컴퓨터를 필두로 한 기계는 한층 똑똑해졌다.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을 해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계산이었다.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는 기계가 ‘계산’의 영역에서 종합적 ‘직관(直觀)’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알린다. 한층 영리해진 기계는 과거보다 더 빠르게, 더 넓게 인류와 충돌할 수 있다.

어디까지 인류를 ‘대체’할까

AI는 이미 우리 일상에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단순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과 추론을 하며 고도의 정신노동까지 대체하는 추세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인류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기술 가운데 하나로 AI가 지목됐다.

의료 분야에서 AI가 X선, CT, MRI 등 메디컬 이미지를 자동으로 분석해 유력한 질병을 찾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방대한 의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간단한 진료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금융 분야에선 사람보다 AI가 뛰어나다. 다양한 자료와 숫자를 받아들여 분석하는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AI는 사람보다 정확하게 현상을 판단한다. 심리적으로 흔들리지도 않고, 주저하지도 않기에 투자수익률 측면에서 더 나은 실적을 거두기도 한다. 보험업계에선 위험률 산정 등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전쟁터에선 무인항공기 드론이 적군을 공격한다. 전투로봇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인류가 개발한 기계가 인류의 목숨을 위협한다. 인류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지는 ‘창작’까지 넘보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AI프로그램 ‘딥드림(Deep Dream)’은 추상화를 그리고, 미국 예일대가 개발한 AI ‘쿨리타(Kulitta)’는 음계를 조합해 작곡을 해낸다.

AI와 로봇의 발달 등으로 일자리 500만개 이상이 사라진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증권 애널리스트, 보험설계사, 회계사, 세무사 등이 미래에 AI로 대체된다고 예측한다. 영국 BBC는 ‘사라질 위험이 있는 직업군’을 발표하고 “고도의 정신노동이 포함된 직업들이 사라질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후의 보루’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분야는 이제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정밀·복잡한 육체노동이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가장 오래 남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AI를 실현할 수 있는 로봇이 인간의 섬세한 손가락 움직임까지 따라오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세밀한 페인트칠처럼 비교적 단순한 노동도 기계가 대신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로봇을 쓰기보다는 사람을 쓰는 게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도 아직은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서승우 교수는 “복잡한 계산은 인간이 AI를 따라갈 방법이 없다. 감각적인 부분도 선을 넘기 시작했다”면서도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는 미묘한 부분까지는 아직 AI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철학적인 문제나 도덕적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봤다.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시립대 철학과 이중원 교수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며 “AI는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AI의 자율성과 용도 등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도 “기술 발전과 함께 인간과 기술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판 박세환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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