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개최된 이세돌(33)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 4번기. 1∼3차전을 모두 져 5번기로 열리는 이번 시리즈에서 승리를 내준 이 9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번 대국은 승자가 결정되더라도 5번기까지 모두 두도록 돼 있다.
이제는 도전자의 입장이 된 이 9단은 앞선 3차례의 대국에서 가장 잘 싸운 2국을 떠올린 듯했다. 백을 잡은 이 9단과 알파고는 무려 11수까지 2차전과 꼭 같은 곳에 돌을 뒀다. 하지만 계속 2국처럼 두다간 이 9단이 패할 것이 분명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 이 9단이 백 12로 우하귀에서 국면을 비틀었다. 정면 승부로 보였다. 전날 3차전에서 초반 전투로 승부를 보려다가 역시 전투에 능한 알파고에 불계패했던 그는 4차전은 세력을 두텁게 하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인 모양은 알파고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송태곤 9단은 “알파고의 흑 9수는 외로운 돌이었지만 가면서 좌상 흑돌과 연결되면서 흑 세력이 두터워졌다”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했다.
이 9단은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40수로 대공세로 나왔다. 이어 46수를 가운데로 두면서 전형을 넓혀갔다. 2시간이 지나면서 이 9단과 알파고는 바꿔치기로 실리를 노리고 있었다. 이 9단이 중앙 위쪽을 내주는 대신 우측 가운데를 취하는 모양. 바꿔치기에서는 이 9단이 실리를 취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다소 욕심을 낸 듯 흑 69로 가운데를 크게 지키려 했다. 알파고의 승부수로 보였다. 장고 끝에 악수라던가. 5분여의 장고 끝에 이 9단은 가운데 70으로 응수했지만 패착인 듯했다. 흑이 71로 응수하자 이 9단이 힘들어보였다. 이 9단은 다시 15분 이상 생각하고 72수로 끊었지만 바꿔치기로 좋았던 흐름을 다시 내준 듯했다. 대국장 분위기도 무거웠다. 송 9단은 “10∼15집 정도 알파고의 우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3시간이 지날 무렵 이 9단이 78수로 장기인 비틀기를 시도하면서 이변이 일어났다. 현장을 참관한 중국의 구리 9단은 ‘신의 한수’라며 감탄했다. 이후 알파고의 상식을 깬 악수가 잇달아 쏟아졌다. 알파고가 4점을 잡힐 상황에서 흑 87, 89로 잇달아 6점이 죽는 수를 뒀다. 제친 85수도 엄청난 악수였다. 흑 87은 자멸의 시작이었다.
송 9단은 “프로라면 한 대 맞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수”라면서도 “이해는 안 되지만 왜 그런 수를 던졌을까”라며 계속 의아해 했다. 이 9단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이 9단은 제한시간 2시간을 다 쓰고 초읽기에 들어갔다. 알파고는 무려 1시간5분이나 남았다.
알파고의 이상한 수가 또다시 나와 장내가 술렁거렸다. 백이 많은 좌하귀에 흑 97을 두면서 죽으려고 들어가는 형국을 만들었다. 이 9단이 승기를 잡은 듯했다. 7집반 정도로 이 9단이 유리한 것으로 보였다.
알파고가 흑 113으로 좌변 쪽 백집으로 치고 들어가며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 9단은 빈틈없는 끝내기로 막아냈다. 상대의 실수를 노린 알파고가 이곳저곳을 찔러봤지만 승산이 없자 마침내 알파고가 돌을 던졌다.
180수 만이었다. 기보 해설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기계한테는 아직 지지 않겠다는 인간들의 의지가 담긴 박수였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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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13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