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을 넘어섰다” vs “바둑도 결국 계산의 영역”

입력 2016-03-13 21:27 수정 2016-03-13 22:12

처음에는 ‘설마 지겠거니’ 했다. ‘체스는 몰라도 바둑은 어림없지’ 내심 콧방귀도 꼈다. 헌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알파고와 마주앉은 이세돌 9단이 자꾸 머리를 긁적인다. 내리 연패를 했다. 바둑을 모르던 이들도 왠지 가슴이 답답해 진다.

12일 3국에서 알파고에게 불계패한 뒤 이 9단은 “이세돌이 진 거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당혹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정말 인간이 인공지능에 패배한 걸까. 이젠 인공지능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앞서나가기 시작한 걸까.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로 닥쳐온 걸까. 이를 가늠하려면 알파고의 승리, 그 의미를 제대로 짚어봐야 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는 “데이터 처리 등 특정영역에선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며 알파고의 승리가 이를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과거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역할도 애초에 프로그래밍된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알파고 이후의 인공지능은 다르다. 클라우드 컴퓨팅(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 여러 대가 함께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과 빅데이터 기술의 발달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이 조력자 역할에서 벗어나 인간을 이끌어 나갈 수도 있을까. 이 교수는 “광범위한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미지로 남겨진 영역까지 인도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100년쯤 뒤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회 규범이 바뀔 것이다.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알파고는 단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공지능일 뿐이란 의견도 있다. 인간의 역할을 넘보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모 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문제를 부여하고 해결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알파고는 단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둘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며 “기존에도 특정 문제를 인간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많았다. 그 대상이 이번에는 바둑일 뿐”이라고 말했다. 바둑 역시 넓게 보면 계산의 영역이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력과 추론 능력을 앞선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신훈 심희정 홍석호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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