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의 헌신으로 방글라데시 빈민촌에서 의사와 교사, 사역자 등 미래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다. 이곳에선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그를 ‘마(엄마)’라고 부른다. 독신으로 평생 돌봄 사역을 펼친 노재인(56) 방글라데시 선교사의 이야기다.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중앙로 합동신학대학원대에서 노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이 학교 목회학 석사(MDiv)의 마지막 과정을 밟기 위해 지난 2월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현지에서 여성 사역자를 전문적으로 키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며 “방글라데시의 다음 사역을 두고 기도 중”이라고 말했다.
노 선교사는 1990년 방글라데시를 방문하고 온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총무 김명혁 목사로부터 현지에서 일할 영양사와 안과의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스무 살이던 80년 8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하나님께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약속했어요. 방글라데시 소식을 듣고 하나님과의 약속이 기억나 망설이지 않고 바로 그곳에 갔죠.”
노 선교사는 국제기독 NGO인 월드릴리프와 협력해 90∼94년 주민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영양·위생 교육 등을 진행했다. 당시만 해도 방글라데시는 6·25전쟁 직후의 한국과 비슷했다.
“어느 날 마을 지도자들이 찾아와 ‘당신 안에 있는 빛을 보여 달라’고 말했어요.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마태복음 28장 20절이 생각났죠. 선교사로 살기로 결단했어요.”
마을 주민들은 노 선교사에게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다가 강물에 빠지는 사고 등이 잦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졸마와 메헤뿔 지역에 14개 학교를 세웠고 신앙 교육을 병행했다.
하나님은 현지 아이들을 축복하셨다. 노 선교사가 세운 학교의 아이들은 총명했고 독립적이었다. 방글라데시의 국립대인 다카대 의대에 합격하는 등 우수한 학생들이 계속 배출됐다.
노 선교사는 2000∼2004년 다카 지역에서 미국 NGO인 FOB(Friends Of Bangladesh)와 협력해 과부 등을 위한 직업훈련과 돌봄 사역을 진행했다. 2004∼2011년에는 고아원 ‘기쁨의 집’ 원장으로 80여명의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부모 역할을 했고 2012년 ‘해바라기 고아원’을 세웠다. 같은 해 노 선교사는 학교·여성·고아원 사역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임마누엘 선교회’를 설립했다.
노 선교사는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선하게 일하시는 것을 많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노 선교사는 “방글라데시에 기독교 대학이 없는데 대학 설립을 두고 기도하고 있다”며 “이 기도제목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 믿는다”라고 전했다.
수원=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방글라데시 빈민들의 어머니… 고아와 과부 돌봄사역 25년 노재인 선교사
입력 2016-03-13 18:50 수정 2016-03-13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