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옆집 女 나체 몰래 찍다 기소 30대 男 “훔쳐보기는 인간의 본능” 황당 변론

입력 2016-03-13 19:07
“훔쳐보기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고전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광범위하게 다루는 소재 아닙니까?”

지난달 23일 서울법원종합청사 501호 법정. 한 변호인이 재판부를 향해 ‘특이한 변론’을 시작했다. 변호인 옆에는 30대 회사원 A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A씨는 지난해 7월 3일 밤 12시쯤 이웃집 여성 2명의 나체를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기소됐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무더운 날씨에 창문을 열었는데, 마찬가지로 창문을 열어둔 채 나체로 집안을 돌아다니던 옆집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A씨는 창틀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설치한 뒤 그들을 촬영했다. 이를 눈치 챈 여성들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A씨 측은 법정에서 “훔쳐보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라고 항변했다. 죄를 묻기 전에 자연스러운 욕망임을 감안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이어 “피해 여성이 일부 속옷을 입어 ‘중요 부위’가 모두 노출되지 않았다”며 선고유예를 요청하기도 했다.

법원은 A씨 주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김수정 부장판사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했다고 13일 밝혔다. 촬영한 영상은 몰수됐다. 김 부장판사는 “죄질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훔쳐보기가 본능이라는 A씨 주장은 법적으로 타당한 걸까. 법조계 관계자는 “단순히 자기 집에서 이웃을 훔쳐본 거라면 현행법상 죄를 묻기 애매할 수 있다. 남의 집에 침입하는 등의 범행이 수반되지 않고 그냥 엿본 거라면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훔쳐보기가 ‘본능’이어서 처벌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며, 이 경우엔 ‘촬영’까지 했기에 명백히 범죄가 성립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전주지법은 상가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여성을 ‘훔쳐본’ B씨(35)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상가 화장실은 성폭력특별법의 ‘성적 목적의 공공장소 침입행위’에 규정된 ‘공중화장실’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반면 지난 1월 서울북부지법은 상가 화장실에서 여성을 ‘몰카 촬영한’ C씨(27)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