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 알파고는 우리의 ‘오래된 과거’인 동시에 ‘미래’다. 미래란 오래된 과거를 현재가 재해석한 또 다른 이름이다.
수천년 인간이 문화로 발전시킨 바둑의 역사가 있었기에 알파고가 있게 됐다. 헤아릴 수 없는 기보를 저장하고 학습해 확률로 승리를 이끌도록 최적화된 알파고는 분명 우리 과거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과거 역사를 인공지능으로 바꾸어 인간과 대결시키는 과학은 동시에 우리의 미래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은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알파고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알파고는 한 수 한 수 어떤 순간에도 동요나 감정의 표현이 없다.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알파고는 바둑계 지구 최고의 인간을 이기고도 기뻐할 줄 몰랐다! 인간은 한 수 한 수에 탄식과 흥분, 절망 그리고 공감을 형성한다. 인공지능에 지고도 인간은 실수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추스른다.
13일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4국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절망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흥분했다. 알파고에게선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과거의 유산 알파고를 통해 미래에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우리는 로봇에 진 것이 아니라 이긴 것이다. 다만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조건 아래서다. 우리는 알파고처럼 1000여 대의 컴퓨터가 함께 연대해 게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고독한 혼자가 아니라 인간 최고수의 바둑선수들이 연대해 알파고와 게임을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알파고는 확률로 인간을 이겼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최고의 확률을 연산해내는 소통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인간은 연대뿐만 아니라 소통의 기술을 높여야 한다.
우리의 현 인류는 알파고에 대한 패배를 통해 무엇보다 인간의 미래에 닥친 과제 중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인간이 과거의 실패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구공동체가 직면한 당면과제에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명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살피고 약자를 돌보는 우선순위 말이다.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 펼쳐졌던 바둑이 온 세계를 열광시켰던 이유, 보는 이들이 가슴 졸이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양자가 ‘규칙’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다. 경기 중 전원을 차단하거나 바둑판을 뒤엎지 않는 규칙, 지고도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규칙, 과거의 실패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 이 같은 원칙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필요한 규칙이 아닌가.
이 사순절의 절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펼치시는 ‘거룩한 게임’을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은 확률이 아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고독하게 끝까지 사랑의 규칙을 갖고 피땀 흘려 영생의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의 규칙을 몇 번이나 어기고 싶으셨겠지만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수많은 핍박을 참으시고 죽으시고 부활로 승리하셨다.
바둑이 끝난 다음 복기를 통해 다음의 성공을 기약하듯이 우리는 과거의 실패, 즉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확정해야 한다. 바둑에 실수가 있듯이 인간의 삶에서도 끊임없는 실수와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파고와의 바둑게임이라는 인간 역사를 통해 오히려 만물의 끝이 되시는 ‘오메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유경동 감신대 교수<한국기독교윤리학회장>
[기고] 알파고, ‘오래된 우리의 미래’
입력 2016-03-13 19:06 수정 2016-03-13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