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황금빛 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잔잔히 흐르던 음악이 끊긴다. 불안한 정적을 깨고 ‘탕’ 하는 총소리가 울린다. 밀밭 속 까마귀 떼가 날아오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한 프랑스 파리 외곽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황금 밀밭을 만난 곳은 ‘서울역284’에서 다음달 17일까지 전시하는 ‘반 고흐 인사이드’전.
전시장엔 고흐 그림이 없었다. 대신 ‘까마귀가 나는 황금밀밭’은 3D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천장과 벽에 띄워져 스토리를 만들었다. 가상현실(VR) 헤드셋 ‘기어VR’을 쓰면 관객은 ‘아를의 밤의 카페’로 초대됐다.
기술 발전은 인간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VR 헤드셋으로 사람들은 뜻밖의 공간을 만나고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차는 알아서 굴러간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로봇 알파고의 뜨거운 바둑 대결은 온 국민의 관심사다.
한국 기술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AI 기술은 선진국보다 2.6년 뒤처져 있다. 최근 제1호 자율주행 임시허가증을 받은 현대차의 기술력은 2단계다. 구글은 4단계다. 그나마 VR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쟁사를 압도할 만한 기술을 갖고 있다. 기술력보다 정책은 더 뒤처져 있다. 정부는 올해 새 먹거리를 찾겠다며 ‘규제 프리존’을 도입했다. 특화산업을 키우도록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지만 AI나 VR은 없었다.
우리는 과도한 규제와 뒤늦은 정부 지원으로 다른 나라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 드론 사용에 규제가 없는 중국은 12억 달러 규모의 민간 드론 시장을 독식했다.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법규 마련이 늦어져 국내 자동차 회사는 경쟁사들이 앞서 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3D프린터를 이용한 맞춤형 의료기기 시장도 글로벌 기업이 장악했다. 드론, 자율주행차량, 3D프린팅 등은 이번 규제 프리존에 들어갔다.
기업과 개발자들이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다.
서윤경 차장 y27k@kmib.co.kr
[한마당-서윤경] 뒷북 치는 정부
입력 2016-03-13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