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 뒤, 보이지 않는 손들… 선수는 천사, 구단주는 악마라 부르는 에이전트의 세계

입력 2016-03-15 04:00

천문학적인 이적료와 연봉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스포츠 스타들. 그들 뒤엔 스포츠 에이전트(이하 에이전트)가 있다. 에이전트는 선수를 대신해 구단과 연봉 협상을 하고 입단, 이적, 광고 출연 등을 담당하는 대리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에이전트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겐 천사, 구단주들에겐 악마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를 꼽을 수 있다. 한국에도 작지 않은 스포츠 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왜 보라스 같은 대형 에이전트가 없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17일 발표한 ‘스포츠산업 활성화 대책’에서 올해 안에 에이전트 제도 정착 및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스포츠 산업이 크게 성장했지만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하지 않아 선수 관리와 마케팅, 홍보 등 연관 산업의 발전이 늦어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10일엔 에이전트 및 공동 마케팅 등을 통해 프로 스포츠 산업을 활성화해 스포츠 산업을 53조원 규모로 늘이겠다고 발표했다.


문체부가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보이자 에이전트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에이전트 시장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블루 오션이다.

축구의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의 선수 에이전트 제도(FIFA Player's Agent System)는 2015년 4월 1일부로 폐지됐다. 대신 선수와 구단 양측의 협상을 대리하는 ‘중개인’의 시대가 열렸다. 중개인 제도는 최근 세계 축구계에서 발생한 ‘서드파티 오너십(Third-Party Ownership·선수 지분 쪼개기)’과 이면계약, 높은 중개 수수료율, 유소년 선수의 국제 이적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종전 FIFA 선수 에이전트와 달리 중개인은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할 필요가 없다. 각국 축구협회에 필요한 서류와 등록비(신규 70만원·갱신 30만원·효력 1년) 및 중개인 보험 가입만 증명하면 활동할 수 있다. 중개인은 선수고용계약 체결을 위해 중개 업무를 한 경우 계약 전체 기간에 해당하는 선수 기본급여 3%를 받게 된다. 이적 체결을 위해 고용한 경우 이적료의 3%를 받는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한 중개인은 모두 59명이다.

중개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 아무래도 이적과 연봉 협상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닫힐 때까지인 1, 2월은 이들에게 가장 바쁘면서도 중요한 시기다. 담당하고 있는 선수들의 이적을 관장하고, 소속 팀과의 연봉 협상에도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전트는 능력만큼 보상을 받기 때문에 수입이 불안정하지만 무정년, 성취감, 자유로운 생활, 해외 출장 등 장점도 많다. 이동국을 비롯해 많은 스타들을 보유한 전북 현대가 동계훈련을 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만난 한 중개인은 “이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충고를 해 주고 싶다”며 “자기가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지, 선수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지, 부지런히 현장을 누빌 자신이 있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무엇보다 경기를 많이 보고, 사람을 많이 사귀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프로야구는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돼 있다. 추신수는 슈퍼 에이전트 보라스의 도움으로 2013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570억원)라는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리그 입성 9년 만에 FA 대박을 터뜨렸다. 보라스는 계약금의 5%를 가져갔다. 보라스는 류현진을 LA 다저스에 입단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는 앨런 네로라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메이저리그에 들어갔다.

보라스는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한국 돈으로 2조7282억원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포르투갈 출신의 축구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는 지난해 1조1313억원의 계약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보라스 같은 에이전트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는 2002시즌부터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했다. KBO는 2001년 11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에 따라 제도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 프로야구 여건을 고려해 시행을 무기한 연기하는 부칙을 둬 아직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에이전트가 협상에 나서면 선수 연봉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구단의 적자 규모가 매년 커지는 상황에서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면 구단의 재정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거대 에이전트가 등장하면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 혼돈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에이전트의 순기능을 간과한 주장이다. 에이전트는 주로 현재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들과 계약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많은 무명 선수를 찾아내 스타로 키우기도 한다.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선웅 변호사는 “선수들 사이에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면 선수는 연봉 협상 문제로 구단과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 KBO와 구단들이 더 이상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 스타급 선수들부터 단계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한 방법이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에이전트를 통해 연봉 협상을 하면 합리적인 자료를 가지고 선수의 연봉을 책정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구단의 경영 합리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KBO와 구단들도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해 편견만 가질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의 흐름을 직시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프로농구는 제도 자체는 인정하지만, 시행을 위한 등록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주관하는 V-리그는 도입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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