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이세돌 9단이 관계자들과 복기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바둑의 ‘ㅂ’자도 모르는 나조차 뉴스를 챙겨볼 정도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고 수많은 논평이 쏟아졌다. 그중 ‘컴퓨터(알파고)가 둔 수는 모두 언젠가 인간이 두었던 수’라는 말에 위안을 받으며 생각한다. 대국장을 떠나지 않고 복기를 하는 이세돌 9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하고.
한때 나는 시마할 9단이라고 불렸었는데 그건 시 쓰는 시인이면서 아이 키우는 엄마고 회사에도 다니면서 후배들에게는 할머니처럼 푸근하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외와 사생활이라곤 없이 매일매일 고단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내 생활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동시에 담아 붙여준 별명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내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나를 시마할 9단이라 부르던 후배는 시 쓰면서 대학원 공부하면서 강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됐다. 모르긴 몰라도 알파고보다 더 알파고가 되고 싶을 만큼 온 힘을 다해 살고 있으리라.
주간 일기예보를 챙겨보고 사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사생활은 몇 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런 쓸모는 하나도 없는 생각을 하며 뒹굴다가 어제는 미장원에 갔고 세탁소 앞을 지나왔으며 시를 한 편 읽었다. 시인은 썼다. ‘되돌아보면 그 바람을 받아먹고/ 내 나무에 가지에 피를 돌게 하여/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년을 흘렀던 것이다’라고.
당신을 생각한다. 무심한 당신을 생각한다. 복기해 보면 그 무엇도 대신해줄 것 같지 않은 둘만의 시간이 우리에겐 없었으므로 우리는 끝끝내 서로에게 사생활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본다. 인간이 겪었던 모든 사생활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알파고도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아빠보다 더 아빠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내 나무에 가지에 피를 돌게’ 할 수 있는가. 분명한 건 알파고의 몸속에는 따뜻한 피가 아니라 차가운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현미(시인)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사생활
입력 2016-03-13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