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이 지난 2일 드디어 초등학생이 됐다. 부모는 우리 애가 친구를 잘 사귈지, 학교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많다. 잔뜩 긴장한 채 입학식에 다녀온 부모에겐 아직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 있다.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이건 거의 전쟁이다.
엄마·아빠의 ‘수강 전쟁’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정규 수업 외에 교과·특기·적성 등의 수업을 학교장이 재량껏 운영하는 제도다. 비용은 학부모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학교장 재량이어서 신청 방법도 학교마다 다르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곳도 있고 직접 방문해야 하는 곳도 있다.
올해 딸이 서울 광진구의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장인 김모(39·여)씨는 입학식 다음날인 3일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켰다.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큰딸이 배우고 싶어 하는 바이올린과 과학실험 프로그램을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인기 강좌는 불과 1분 만에, 어떤 것은 30초 만에 정원이 꽉 차 수강신청이 끝나버렸다. 수강 전쟁에서 패한 김씨는 바이올린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서울 양천구 박모(38·여)씨는 가까스로 바이올린 강좌 신청에 성공했다. 2일 오후 2시부터 온라인 접수가 시작됐는데, 선착순에 밀릴까 걱정돼 회사에서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동시에 접속했다.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지만 그의 ‘동시 접속’ 작전은 성공했다. 박씨는 “만약 실패했다면 수강료가 배 이상 비싼 근처 학원을 알아봐야 했다”며 안도했다.
아빠들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인 천모(40)씨는 입학식 다음날인 3일 출근길에 딸의 초등학교로 갔다. 오전 7시50분부터 학교 체육관에서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이 있었다. 천씨는 접수 개시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접수창구가 있는 3층 체육관에서 시작된 학부모 줄은 2개 층을 내려와 건물 1층까지 이어졌다. 같은 처지의 출근길 아빠들이 여러 명 보였다. 심지어 담요를 덮고 계단에서 자고 있는 엄마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학부모의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요즘 방과후학교 수강신청 얘기가 많이 올라온다. 한 학부모는 “다른 엄마들은 학교 근처 PC방에 가기도 한다”고 했고, 다른 학부모는 “수강신청을 앞두고 ‘기가 인터넷’은 기본”이라며 “하나는 컴퓨터로, 하나는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늘어나는 수요, 감당 못하는 현실
방과후학교가 인기를 끄는 건 학부모의 가장 큰 고민인 ‘아이 스케줄’을 짜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4교시를 마치고 오후 1시쯤 학교를 나서는데 오후 시간을 아이가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둬야 한다.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면 아이가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오후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고, 비싼 사교육 시장에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이런 ‘평일 오후의 울타리’가 사라진다. 수업을 마친 아이를 누군가 챙겨줘야 하는데, 맞벌이 부부에게는 큰 고민일 수밖에 없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혼자 학교 밖을 돌아다니는 게 불안하고, 그 시간을 다 학원으로 채우려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치열한 수강 전쟁 속에서 학부모들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확대되길 바라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의 방과후학교 만족도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조사한 학부모 만족도는 2010년 69.4%에서 지난해 81.9%로 상승했다. 초등학생 학부모가 중·고교 학부모에 비해 더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런 학부모와 학생의 수요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7개 시·도교육청과 한국교육개발원이 작성한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에는 학교장이 학교 여건과 학부모·학생 요구를 고려해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돼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마다 시설과 인원의 제약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학부모 수요를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방과후학교연구센터 장명림 본부장은 “우리 현실에서 방과후학교는 매우 중요한 교육수단이 돼 있다”며 “학교마다 학부모 수요를 맞추고 더 내실 있는 운영이 되도록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인기 방과후학교 ‘엄빠 전쟁’… 대학생 수강신청 대란은 “저리가라”
입력 2016-03-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