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의신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경계인 삶 기록으로 남겨야”

입력 2016-03-14 04:00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한 3부작의 첫 작품인 ‘야끼니꾸 드래곤’의 개막을 앞두고 연습을 지시하고 있다. 신국립극장은 지난 7일 개막한 ‘야끼니꾸 드래곤’을 시작으로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 ‘파마야 스미레’를 차례로 올릴 예정이다. 일본 신국립극장 제공
일본 신국립극장의 정의신 3부작 가운데 하나인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 ⓒ谷古宇正彦
“자이니치(在日)는 한국과 일본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양국의 어느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연극이라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지난 8일 일본 신국립극장의 ‘정의신 3부작’ 중 첫 작품 ‘야끼니꾸 드래곤’을 개막된 뒤 도쿄에서 만난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은 “일본에서 재일코리안(한국 및 조선 국적자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다, 세대를 거듭하며 귀화 등으로 인해 수(현재 30만명)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왜 일본에 살 수 밖에 없었는지 일본인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신국립극장은 2008, 2011년 공연된 ‘야끼니꾸 드래곤’(3월 7∼27일)을 시작으로 2007년 초연된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4월 6∼24일)과 2012년 초연된 ‘파마야 스미레’(5월 17일∼6월 5일)를 잇따라 올린다. 세 작품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의 경계인인 재일코리안의 신산한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래 3부작으로 집필된 것은 아니지만 세 작품이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했고, 모두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 묶어 한꺼번에 공연하게 됐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고 최근 헤이트스피치가 만연한 일본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의 3부작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패키지 티켓은 이미 매진됐으며 ‘야끼니꾸 드래곤’의 경우 개막 첫날부터 극장 앞에는 취소 티켓을 기다리는 팬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정의신은 “극작가로서 처음부터 재일코리안을 소재로 희곡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내 가족과 주변의 소외받은 사람들 이야기를 조금씩 희곡 안에 넣긴 했지만 의식적으로 재일코리안 문제를 다룬 것은 ‘야끼니꾸 드래곤’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끼니꾸 드래곤’보다 먼저 공연된 ‘예를 들어 들에 피는 꽃처럼’의 경우 솔직히 재일코리안 문제를 다루려고 했다기보다는 신국립극장이 당시 기획한 ‘3개의 비극’ 일환으로 프랑스 작가 라신의 ‘안드로마케’를 한일관계에 빗대어 쓴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종종 콤비를 이루는 히라야마 히데유키 감독의 ‘신씨, 탄광 마을을 세레나데’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규수지방의 탄광 일대를 오랫동안 취재했다. 그리고 일제 때 탄광으로 끌려왔던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남았다가 60년대 폐광 이후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방의 대형 공사현장에 노동력으로 유입된 흐름을 포착했다. 60년대 탄광촌의 재일코리안 노동자 가족을 다룬 ‘파마야 스미레’나 70년대 초 간사이 지방 공항 근처에서 곱창집을 하는 재일코리안 가족을 다룬 ‘야끼니꾸 드래곤’이 나온 배경이다.

정의신의 가족 역시 오사카 근처 히메지의 낡은 판자집에 살았다. 일제 헌병이 된 그의 아버지로 인해 할아버지는 해방 이후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아버지는 일본 국유지에서 고물상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다 정부의 철거정책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재일코리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한 그는 “앞으로 할아버지 세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고 싶다”면서 “3부작 가운데 ‘파마야 스미레’는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적도 아래의 맥베스’(2010),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2012), ‘나에게 불의 전차를’(2013)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하나같이 인간애와 화해를 테마로 한 이들 작품은 한국에선 다소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내가 한일 양국 사이에 있는 만큼 두 나라가 화해하기를 늘 바란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화해를 의도하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뿐이다”면서 “내가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재일코리안들처럼 역사의 거대한 파도 속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도쿄=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