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처방 빠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案’… 대기업 정규직 상위 10%의 임금 인상 자제 등 주된 내용

입력 2016-03-10 21:10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상위 10%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방안’을 정부가 10일 발표했다.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의 열악한 처지의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의 과보호’에 있다고 진단, 이를 깨기 위해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저성과자 해고를 수월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의 근본원인인 대기업·중소기업, 원·하청기업 등으로 갈리는 한국 경제의 양극화 문제는 외면한 채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가조정정책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상생고용촉진 대책’을 발표하며 “10%의 대기업·정규직이 과도하게 가져가는 과실을 90% 중소기업,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청년고용 확대에 활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국의 대기업·정규직 근로자(100) 대비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2014년 기준 34.6에 그칠 정도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중구조는 외환위기(1998년) 이후 계속 심화되는 추세다. 실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수준은 시간당 임금총액 기준 50.4%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책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지침 등을 확산시키고 30대 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상위 10% 임직원의 임금인상 자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임금단체교섭 지도방향도 배포할 방침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의 원인을 대기업 정규직이 너무 많이 가져가고 너무 많이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이 장관은 “10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조가 70%대에 이르는 노조 조직률을 토대로 자기중심적 노동운동을 하고 임금·고용계약 등을 정규직에게 유리하게 형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가 노동조합의 문제만 지적했을 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낳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은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원가절감을 강요하고 그 수익을 빼앗아오는 등 양극화를 불러오는 경제체제는 손대지 않으면서 근로자의 근로조건 격차만 해소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제시된 원·하청 동반성장 방안은 상생결제시스템 확대, 상생협력기금 출연 등 노사정 대타협에서 마련된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 전부다.

실제 정부도 노동개혁법 통과 압박을 더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이 장관은 “현장의 노동개혁 실천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노동개혁 입법의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행정 조치로 할 수 있는 여러 노력은 하겠지만 입법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사실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고 전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