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협조 차원 가입자 정보 제공 위법 아니다”… 대법 “개인정보 넘긴 네이버 배상책임 없다” 판결

입력 2016-03-10 22:03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인터넷 포털·이동통신업체 등)가 수사협조 차원에서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다만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통신자료 제공의 정당성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크게 감청, 통신내역, 통신자료 등 3가지다. 감청과 통신내역은 영장이 있어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이번 소송의 대상인 통신자료는 영장 없이도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사업자 측에서 제공할 수 있다. 통신자료에는 가입자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ID, 가입·해지 일자가 담긴다.

사업자들은 수사기관 요청이 있으면 기계적으로 통신자료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2010년 7월 이른바 ‘회피연아’ 동영상으로 수사를 받았던 차모(36)씨 사건을 계기로 정당성 문제가 부상했다.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공익과 개인 사생활 보호라는 사익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1·2심 법원의 판단도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정보를 제공한 사업자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사업자가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을 따져보지 않고 정보를 제공한 것은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봤다.

대법원이 10일 내린 결론은 1심 판결 취지에 가깝다. 통신자료를 제공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전기통신사업법의 입법취지라는 논리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에 전달되는 정보가 인적사항에 한정되기 때문에 사익 침해 정도가 비교적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2심 판결에 대해선 “사업자에게는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심사할 의무가 없고, 오히려 심사를 할 경우 혐의사실 누설 등 별도의 사생활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은 사업자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출 요청을 받으면 ‘응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해당 조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하며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지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려대 박경신 교수는 대법원 선고 직후 “익명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내밀한 사상을 인터넷에 쓴 경우에도 수사기관은 영장 없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라며 “요구할 수 있는 정보를 제한하지 않는 테러방지법과 연계되면 그 위험성이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만 590만여건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제공됐다.

수사기관은 협조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기본적 인적정보를 먼저 확보해야 이후 압수수색 등 본격 수사가 가능하다”며 “대법원의 이번 판단을 계기로 원활한 협조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업체들은 2012년부터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서비스 전체 영역에서 사생활 보호 철학을 강화해 나갈 것이며, 판결문을 검토한 후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수 김준엽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