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배우 김부선씨의 폭로로 사회적 이슈가 됐던 아파트 관리비 비리 의혹은 사실이었다. 전국 중대형 아파트 단지 5곳 중 1곳은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었고, 비리 행위자의 76.7%는 입주자대표회장과 관리소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비를 자신의 ‘쌈짓돈’처럼 갖다 쓴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같은 비리는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이 관련 법령 개정에 따라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 공인회계사회, 경찰청과 합동으로 실시한 공동주택 회계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이번 감사에는 대상 아파트 9009곳 중 99.8%인 8991곳이 포함됐다. 정부는 그동안 아파트가 사적인 영역이라는 점에서 감사를 하지 않았으나 아파트 관리비 관련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자 이번에 처음으로 전국 3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외부 회계감사를 실시했다. 300가구 이상 아파트는 지난해부터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감사 결과를 보면 전체 아파트 단지의 19.4%인 1610곳이 회계처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회계장부와 실제 현금 흐름이 맞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입주자대표회장이나 관리소장이 별다른 증빙 없이 관리비를 쓴 경우도 허다했다. 충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무려 20억원의 부정 의혹이 적발되기도 했다. 아파트 관련 공사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어기고 수의계약을 체결하거나 자격이 없는 업체와 계약을 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데도 누구 하나 제대로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비리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입주자대표회의에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회장, 동대표 등으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비 집행 승인, 각종 공사업체 선정 등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이렇게 소수의 담합으로 탄생한 ‘작은 권력’이 관리소장 및 외부 업자와 담합해서 관리비 유용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입주민의 무관심과 행정 당국의 방관은 이들의 비리를 더욱 키웠다. 주민들은 자신의 선거로 뽑은 입주자대표회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당국은 잘못을 발견해도 강력한 제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아파트는 우리나라 전체 주택의 59%를 차지하고 연간 관리비 총액도 12조원에 이른다. 정부가 아파트 관리비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공동주택 관리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뜯어고치고 상시적인 감사와 강력한 처벌 등으로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속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입주민들의 관심일 것이다. 아파트 관리 주체들에 대한 감시망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고질적인 아파트 관리비 짬짜미가 사라진다.
[사설] 아파트 관리비마저 짬짜미하는 나라
입력 2016-03-10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