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복도에서 바라보는데 시꺼먼 바닷물이 밀려오는 거야. 어찌나 급했는지 한달음에 달려가 손녀를 트렁크에 집어던지고 시동부터 걸었다니깐.”
지난 8일 일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사쿠라이 공용주택 단지에서 만난 고와타 히메코(68)씨는 대지진에 이어 쓰나미가 몰려오던 당시를 어제처럼 생생히 떠올렸다. 유치원을 마친 손녀딸을 태우고 돌아온 고와타씨는 빨래를 걷으러 먼저 올라갔다가 복도에서 이불을 챙겨 달려 나가는 이웃과 마주쳤다. “쓰나미가 밀려온대. 어서 피해요.” 고개를 해안 쪽으로 돌리자 이쪽으로 몰려오는 검은 바닷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길로 구르듯 아래로 내려간 그는 주차장에서 놀던 손녀딸을 차에 밀어넣고 무작정 차를 몰았다. 주인의 기척을 느낀 애완견이 집 안에서 계속 짖어댔지만 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구하려 했으면 틀림없이 내가 죽었을 거야. 근데 더 마음 아픈 건 내게 피하라고 알려준 그 이웃 부인은 정작 쓰나미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지.” 고와타씨는 복받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큰길로 나서자 피난 나온 차들로 도로는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는 차를 돌려 해안 반대편 골목길을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당시 길에 멈춰 있던 인파와 차량은 곧 들이닥친 쓰나미에 휩쓸려버렸다고 했다. “우연히 이웃 부인의 남편이 같은 공용주택에 들어와 다시 이웃이 됐지 뭐야.” 고와타씨는 자신들을 살려준 그 부인 역시 차로 막혔던 거리에 있었을 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해줄 얘기가 많다”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것을 권한 고와타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원래부터 이웃 친구이자 지금은 위층에 살고 있다는 우에무라 게이코(66)씨가 대화에 합류했다. 우에무라씨는 쓰나미 당시 남편을 잃었다. 자녀들은 사고 전부터 도쿄에 살고 있었기에 지진 후 남편의 사망을 확인한 뒤 자녀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했다.
손녀와 함께 내륙 쪽 임시 피난처로 향한 고와타씨는 다행히 아들딸 부부와 재회했다. 형편이 나쁘지 않은 축이었지만 이재민 생활은 고됐다. 외곽도시로 피신한 뒤 난리통에 딸들과 함께 서너 곳을 전전해야 했다. 자녀 학교 문제로 아들딸들이 후쿠시마시 등 피난지에 정착하면서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미나미소마시 가시마구에 마련된 가설주택에 터를 잡았다. 우에무라씨도 비슷한 시기에 도쿄에서 돌아왔고 우연히 같은 가설주택에 배정돼 재회했다.
‘앉아서 손을 뻗으면 사방에 벽이 닿는’ 1.8㎡짜리 가설주택에서의 4년은 쉽지 않았다. 3명만 앉아도 방이 꽉 차 모든 생활을 앉아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대부분 생판 모르는 남들뿐인 가설주택에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냈다.
고와타씨는 특히 이재민을 도와온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자주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그들과 무척이나 친해졌다며 주고받은 편지와 화분 등을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했다.
재난 후 한동안은 지진과 쓰나미 피해뿐 아니라 방사능에 대한 걱정까지 이들을 괴롭혔다. 우에무라씨는 “지금은 적응이 돼 별다른 의식 없이 생활한다”면서도 재난 초기에는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전했다. 때문에 방사능 우려에 대해서는 “이젠 염려할 것 없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센다이 원전 등을 서둘러 재가동한 정부의 처사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쓰나미야 지금 살고 있는 곳까지 들어올 수 없기에 안심이지만 원전이 문제”라며 “원전으로부터는 도망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비슷한 시기에 또 우연히 같은 공용주택 단지로 배정받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며 공용주택 생활에는 생각보다 만족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다만 공용주택 역시 전체적으로 고령자들이 아주 많고, 서로 교류가 없다는 점을 염려했다. “(시에서 진행하는 공동체 회복 행사에 나가 보면) 우리는 아주 젊은 축이라 어울리기 힘들다”고 겸연쩍어하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다 살아간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5년이라는 세월이 대지진의 상흔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나미소마=글·사진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이재민들… “서로 의지하며 살아요” 조금씩 지워지는 상흔
입력 2016-03-1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