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를 여는 1월, 그것도 시무식날이었다. 혹한 속에서 오한과 고열에 시달렸다. 동네 병원에선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종합병원에서는 급성 폐렴이라 바로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이 떨어졌다. 한 일주일 있다 퇴원하면 말끔히 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퇴원 후 좀 나았나 싶어 약을 거르면 여지없이 오한이 찾아들었고 잦은 기침 때문에 흉통에 시달려야 했다.
방학 동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모두 제쳐놓은 채 그렇게 한 달을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완주 봉동중앙교회 홍성인 목사님의 위로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휴가라 생각하기로 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롬 5:3)하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2월을 여는 날, 처음으로 집을 나섰다. 잔기침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 대로 움직일 만하다고 판단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국도를 택해 광주행을 시도한 것이다. 차에 오르기 전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한우 세트를 실었다. 아무래도 전북 순창을 거쳐 가야지 싶어서였다.
순창에는 아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이태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적 옆 침대의 환우셨다. 그 할머니와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던 중 농약 치지 않고 농사지은 고추로 고추장을 직접 담그신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그 후로 순창 시골집에 한번 들른 적이 있었다. 고추장이며 된장을 사왔고, 이후에는 주변사람에게 고추장을 팔아주기도 하며 인연을 지속했던 것이다. 고추장값을 부치면 이것저것 농산물을 보내주시기도 하는데 할머니가 자부할 만큼 작달막한 배추에서는 신선한 단맛이 났고 7분도 쌀은 어찌 그리 차진지 몰랐다.
순창으로 향해 가는 도중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날씨 탓인지 온몸에 한기가 들면서 오슬오슬해지기 시작했다. 괜히 출발했구나 하는 후회감이 엄습했지만 이미 집에서 멀어진 탓에 운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순창 할머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몸이 좋질 않아 바로 가야겠다며 선물만 마루에 놓고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붙잡는다. 떡국을 얼른 끓일 테니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입맛도 없을 테니”라는 말에 잠깐만 주저앉기로 했다.
떡국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맛이었다. 직접 농사지은 쌀로 시골 방앗간에서 빼낸 떡이었다. 도시의 방앗간과 달리 시골에서는 떡을 빼낼 때 두어 번 더 치대고 빼낸다. 뿐인가. 수년을 묵힌 장으로 간을 하고 짚으로 덮어둔 텃밭 움파를 송송 썰어 넣은 떡국은 여느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명품 떡국이었다.
도마 소리며 솥뚜껑 여닫는 소리, 거기에 고소한 냄새까지. 어느덧 오슬오슬하던 한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떡국에 홀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 할머니는 밭에서 뽑아온 배추를 한 번 싸먹어 보라 건네신다. 할머니의 명품 고추장이 가미된 쌈장에 노란 배추 속잎을 찍어 먹는 맛이란…. 신기한 일이었다. 그 한 끼 후에는 약봉지에 손도 대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먹은 것일까. 정성 들여 심고 가꾼 농산물을 다시 정성으로 발효시켜 정성으로 조리한 음식 안에 한가득 들어 있는 갖은 정성과 따스한 할머니의 정을 먹고 왔던 것 같다. 사랑을 담은 음식은 우리를 치유하는 약선 음식이다. 엄마의 집밥 그리고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정성들여 마련하는 교회 밥에는 사랑과 정성이 있었다. 몸과 마음의 치유 음식이었다.
김정숙 백제예술대 교수
◇약력=△중앙대 박사 △미국 UCLA Post-Doc △완주 봉동중앙교회 집사 △백제예술대 교수
[따뜻한 밥 한 끼-김정숙] 순창 할머니의 떡국
입력 2016-03-10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