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재앙의 땅에 피는 ‘희망’… 동일본대지진 5년, 후쿠시마를 가다

입력 2016-03-11 04:00
7일 촬영한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라하마 마을의 모습. 쓰나미가 휩쓸고 간 방향대로 쓰러져 밑동만 드러낸 나무들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짐작케 하고 있다. 멀리 해안에 새로 지어진 방조제가 보인다.
정건희 기자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원전 사고를 떠올리며 지난 8일 찾아간 후쿠시마 일대는 여전히 제염(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복구조차 포기한 채 방치된 땅도 많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비교적 평온을 찾은 모습이었고, 조심스레 ‘희망’의 눈빛도 보였다.

이날 후쿠시마역 인근에서 만난 이케다 신이치(43)씨는 “(당시를) 잊을 순 없겠지만 굳이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묻자 “이젠 일본 내 다른 도시나 다를 바 없다더라. 5년이나 지났으면 괜찮은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짐짓 외지인의 호들갑을 나무라는 투다.

이 일대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미나미소마시까지 차로 한 시간을 달렸다. 후쿠시마시에서 남동쪽으로 60여㎞ 떨어진 곳이다. 미나미소마시 남단은 폭발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10㎞ 남짓 거리에 불과하다. 인구 7만명의 소도시인 미나미소마시에서만 동일본 대지진 당시 1119명이 희생됐다.

‘미나미소마에 다 와가는구나’라고 느낀 것은 왕복 2차로 좁은 길에 검은 봉투를 실은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면서부터였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동그라미나 殘(잔, 잔해)이라고 쓰인 제염작업 봉투가 길가에 그득했다.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 인근에도 검은 봉투는 여지없이 쌓여 있었다.

얼핏 수천개는 족히 돼 보이는 봉투가 쌓여 있는 대규모 작업 현장 옆에 차를 세웠다. 조회 중인 듯 모인 10여명의 작업자들에게 다가가 하는 일을 물었다. 한 작업자가 앞을 가로막으며 “공사 주관사의 허락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취재를 거절했다. 안전모와 마스크, 스카프로 얼굴 전체를 가린 채 눈만 내놓은 모습에서 원전 사고는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새삼 실감했다.

시청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쓰나미로 수몰됐던 기타이즈미 해안에 도착했다. 새로 건설 중인 방조제가 바다를 향한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가운데 과거 거주지역이던 벌판에는 방재용 삼림지대를 만들기 위해 지대를 높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쓰나미가 올 때 그 진행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공사 현장 인근의 동산에는 ‘대지진수몰희생자위령탑’과 함께 사고 후 복구된 공원이 이목을 끌었다. 사방이 공사 현장인데 뜬금없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인근 놀이터에서 4명의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 두 젊은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지역 출신인 오노 료코(24)씨와 가네코 미요(24)씨는 각각 서너 살짜리 남매를 데리고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공원을 찾았다고 했다. 지진 당시 후쿠시마시로 피난을 떠났던 그들의 동네는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수몰을 피했고 이웃들도 현재는 대부분 돌아와 사고 이전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사능 피해가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두 엄마 모두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적응이 돼서 괜찮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것 자체에서 그들이 ‘안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후쿠시마·미나미소마·센다이=

글·사진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