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손성호] 교회여, 그리스도 부활을 현재화하라

입력 2016-03-10 18:53

초동교회 옆에는 ‘돈의동 쪽방촌’이 있다. 본래 서울 중구 초동에 있던 교회는 1972년 ‘민중선교와 통일선교’의 꿈을 품고 이곳 종로3가로 이전했다. 당시 이곳은 ‘종삼’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윤락가였다. 교회는 40년간 이 자리를 지켰다. 그때의 윤락가는 지금 쪽방촌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어둡고 침침하다. 교회의 문턱은 적잖이 높았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웃사랑의 계명을 잊고 지낸 적은 없었다. 다만 섞이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40년 넘게.

쪽방촌은 밖에서 보면 작은 골목길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각양각색 사연을 지닌 수백 명이 뒤엉켜 있다. 하룻밤 8000원에서 1만원의 방값을 내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119 구급대 차량이 비좁은 골목길을 가로지른다. 또 누군가 실려 간 것이다. 나는 가끔 이곳 ‘쪽방촌’엔 딱 두 부류의 사람이 산다고 말한다. 한 부류는 ‘살아서 나갈 사람’, 또 한 부류는 ‘죽어서 나갈 사람’, 오직 그뿐이다.

목회자와 교인들에겐 늘 무언가 해야 한다는 신앙적 부담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나이 지긋한 신사 한 분이 등록했다. 쪽방촌 식구였다. 중절모를 쓰고 깨끗한 옷을 입고 찾아왔다. 남루한 차림에 냄새난다며 사람들이 피하는 겸연쩍은 상황을 스스로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는 그가 아프다는 소식에 쪽방을 찾았다. 사람 하나 누울 수도 없는 비좁은 방에 그가 새우처럼 쭈그린 채 누워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듣자니, 형님이라는 분이 찾아와 시신을 수습했단다. 빈소도 없이 당일 화장터에서 한줌 재가 되어 어딘가에 뿌려졌다고 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목사로서 그를 위해 장례예배를 드리기로 결심했다. 평일 오후 부교역자들과 그를 아는 몇몇 이들이 함께 본당에서 그의 영정사진을 놓고 몇 송이 국화를 마련해 예배를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40년 동안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했던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나둘 쪽방촌 식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쪽방을 돌보는 쉼터 실무자들과 보건소 직원, 사회복지사도 왔다. 늘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이도 영정사진 앞에선 한없이 거룩해졌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삶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의 마지막 시간은 선명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고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밑바닥 인생.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나보다. 신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리라 기대하며 말이다. 그날 이후 마침내 그들이 먼저 말을 건넸다. 쪽방촌 식구들과 함께하는 예배를 시작해주면 좋겠다고. ‘부활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부활은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희망’이다. 교회만의 잔치가 아니라 온 세상의 잔치가 되어야 할 사건 중의 사건이다. 늘 ‘부활절’이라는 날과 절기에 집착해왔다. 아니다. 부활은 오늘도 사건이 되어 우리 가운데 증거가 된다.

‘교회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현재화하자.’ 먼저 십자가를 지자. 인류가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지 말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되 나만이 아닌 이웃을, 내 편만이 아닌 사회를, 내 나라만이 아닌 인류의 지평을 펼쳐보자. 국회의원 선거를 ‘전쟁’이라 말하는 정치, 이 나라를 ‘지옥’이라 말하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은 ‘여기’야말로 더욱 부활이 절실한 땅이다. 이제 곧 부활절이다. 먼저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아픈 사람들, 약한 사람들, 낮은 사람들을 찾아서 일으켜 세우자. ‘전도축제’가 아닌 진짜 ‘이웃초청 잔치’를 열자.

손성호 목사(초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