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수급 불균형과 교회 양극화 현상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에 나선 목회자가 있다. 디자인 회사 ‘나음과 이음 디자인’ 대표 오재호(41) 목사다. 그는 2013년 사업을 시작해 2년간 자립 기반을 다진 뒤 교회를 개척했다. ‘선(先) 자립, 후(後) 개척’이란 색다른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지금도 목회와 사업을 동시에 책임지는 ‘자비량 사역자’로 활동 중이다.
회사에서 제품 홍보, 디자인을 맡는 오 목사지만 정작 디자인을 공부한 건 아니다. 총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해 17년간 부교역자로 사역한 그는 사업가나 디자이너보다 사역자에 가깝다. ‘뼛속까지 목사’인 그가 왜 디자인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던 오 목사를 만났다.
“규모도 작고 조건도 열악한 여러 교회끼리 협력해 대형교회가 할 수 없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역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지역 교회들끼리 성도 수로 경쟁하기보다 상생하는 ‘사역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를 위해선 목회자의 재정 자립이 필수적이었죠.”
오 목사는 학부 3학년이던 1998년부터 전도사 생활을 했다. 2012년 전임 사역을 그만두기까지 줄곧 700∼800명 규모의 중대형교회를 섬겼다. 하지만 개척을 하려던 당시 몸담고 있는 교회가 분열되고 청빙도 받기 어려워지자 자립형 목회로 자연스레 관심을 돌렸다.
“교계에서도 학력이나 연줄, 재력이 없으면 후임 목사로 청빙받기 어렵더군요. 자녀가 3명이라 앞으로 살 길이 걱정인데, 주변에서는 기도하라고만 해요. 하나님 섭리를 믿지만 저는 시쳇말로 ‘흙수저’이거든요. 조건 좋은 이들이 후임 자리를 차지하는 현실을 보며 ‘하루 빨리 자립하겠다’고 결심했죠. 기존 성도들에게 ‘개척 멤버로 함께해 달라’며 짐을 지우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는 부교역자 시절 어린이 전도를 나설 때마다 지역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자주 접했다. “작은 교회 목사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줄 때 중형교회 목사인 저는 아이들을 교회로 초청해 영화관에 데려갔어요. 게임이 안 되는 거죠.”
교회 간 경쟁 구도에서 회의감을 느끼던 그가 생각한 대안은 ‘자립형 교회’였다. 목회자가 재정적으로 자립해야 경쟁을 탈피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목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목사가 도전할 만한 창업 아이템은 거의 없었다. 문득 그는 그간 교회에서 줄곧 대외홍보, 교재 출판, 디자인 일을 도맡아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10여년간 워낙 여러 디자인 일을 많이 맡다보니 실력이 꽤 늘더군요. 무엇보다 제 사역 방향에 공감해 제 디자인을 구매하겠다는 분들의 도움이 컸죠.”
사역을 그만둔 이듬해 자택에서 홀로 시작한 회사는 지인들의 성원과 고객의 입소문으로 점차 사세가 확장됐다. 4년이 지난 현재 디자이너 2명과 행정직원 1명을 둔 회사가 됐고 지난해엔 13.22㎡(4평) 규모의 사무공간을 얻었다. 200여곳을 넘어선 고객사는 교회뿐 아니라 기업, 비정부기구, 공공기관 등으로 업종이 다양해졌다.
재정 자립을 이룬 2015년부터는 계획대로 교회를 개척했다. 가정교회 형태로 시작한 교회엔 현재 오 목사를 포함해 사역자 부부 3가정이 출석한다. 모두 자비량 사역자로 일하며 교회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역을 한다. 교회 이름은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란 뜻을 담아 ‘크라우드 처치’라 지었다.
‘지역의 1㎞ 반경 내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을 없애자’는 목표로 시작한 ‘채움 프로젝트’도 이때쯤 본격 시작됐다. 오 목사는 교회 구성원과 회사의 협력단체 40여곳의 후원으로 그간 고양, 파주, 시흥 지역 소외 이웃 및 지역아동센터 등 16곳에서 나눔 활동을 펼쳤다.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 고민하는 다음세대 신학생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당부했다.
“목회와 사업을 같이 하다보니 사회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목회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그게 목회자가 할 일이냐’고 하겠지만 저는 이게 후배들의 사명이고, 감당해야 할 목회라고 확신해요. 신문을 많이 보고 사회 모든 영역에 관심을 가지세요.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에 용감히 나서는 후배를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명함 두개’ 오재호 목사님… ‘나음과 이음 디자인’ 대표· ‘크라우드 처치’ 시무 목회자
입력 2016-03-11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