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정승훈] AI 로봇이 기사를 쓴다면?

입력 2016-03-10 17:49 수정 2016-03-10 18:07

9일 오후 이세돌과 알파고의 첫 번째 대국이 끝났을 때 이를 전하는 국민일보 온라인기사의 첫 문장은 ‘인간이 졌다’였다. 결과를 보고 놀란 건 한두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진화한 로봇은 단순한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산업현장의 로봇과는 수준이 달랐다.

알파고의 하드웨어는 중앙처리장치(CPU) 1202개를 병렬로 연결했다고 한다. CPU 1202개를 병렬 연결하면 어느 정도 계산을 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설명하는 기사를 읽어봤으나 이해도, 실감도 되지 않았다.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병렬 처리된 1202개의 CPU가 훈련되면 일반인이 미처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바둑은 인간이 하는 게임 중 가장 종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종목 중 하나다. 그동안 많은 이들은 AI가 체스는 정복했지만 훨씬 복잡한 바둑은 쉽게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예상을 무너뜨렸다. 구글에 따르면 알파고는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결합시켜 인간처럼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인간이 하는 직관적 사고를 모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3000만개 이상의 움직임에 대해 훈련했고, 바둑 기보를 학습하며 실력을 키웠다.

하드웨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 탓인지, 아니면 AI를 미리 입력된 코딩을 수행하는 덩어리 정도로 생각했던 몰이해가 이유였는지 알 수 없지만 솔직히 알파고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제대로 설계되고 훈련된 AI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 바둑기사를 이길 수 있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저널리즘 분야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척척 써내는 ‘로봇 저널리즘’에 대한 얘기를 들어왔지만 사실 반신반의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긴급 속보 기사를 로봇이 자동적으로 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언론사 논조에 따라 단어를 자동 교체하고, 동일 단어 반복을 피하고자 유사 단어 대체 기능까지 지원한다는 얘기에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국내의 한 경제매체에서 로봇이 증시 시황 기사를 쓰고 있다는 뉴스를 봤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축적된 경험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상식적인 수준의 이해를 바탕으로 쓰는 기사는 오롯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 역시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정밀한 알고리즘만 갖춰 준다면 로봇이 기사를 쓸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해질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에 여섯 권 분량의 영어사전 내용을 입력시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은 ‘오거(Augar)’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에 전자책 공유 사이트에 접속해 수천 편에 이르는 소설 등의 스토리를 읽고 사람처럼 이해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로봇 저널리즘은 컴퓨팅 기술에 기초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기사 작성 방식을 의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먼 미래까지도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미 여러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우리가 진화된 로봇의 능력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아니 지금까지 얼마나 잘 모르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바둑판 위의 싸움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세상에 와 있다. 그게 중요한 거다. 정승훈 온라인뉴스부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