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들어가 ‘휙’ 스치며 끝난 박물관 단체관람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때 박물관을 멀리했다면 이제 생각을 다시 해도 좋겠다. 요즘엔 다양한 박물관이 많고 문화공연이나 학습 행사도 활발하기 때문이다.
11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에는 총 809개(2014년 기준)의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살아있는 역사책’으로 불린다. 고신대 이상규(교회사) 교수는 “역사는 집단적 기억이다. 이 기억을 회상하는 방법은 문서와 유물”이라며 “박물관은 문서와 유물을 펼쳐 보임으로써 과거의 자취를 배우고 본받는 장소가 된다”고 말했다. 기독교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나 기념관도 여럿이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기독교 박물관을 방문해 한국교회 형성 과정을 살펴보며 신앙을 재점검하면 어떨까.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연세대 언더우드가(家) 기념관, 이화여대 이화역사관 등 초기 선교사가 세운 ‘미션스쿨’의 기독 박물관(기념관)을 돌아봤다. 모두 무료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서울 동작구 상도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국내 대표적 기독교 박물관이다. 1층 ‘한국기독교역사실(역사실·사진)’에 들어가면 총 118점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입구 정면엔 강한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는 유물이 눈에 띈다. 성경이다. 1887년 만주에서 출판된 최초의 한글판 신약성경 ‘예수성교젼서’다. 이 성경은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이 번역했다. 전시된 것은 복제본이며 진본은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역사실에는 1882년 존 로스 역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쪽복음을 볼 수 있다. 또 1885년 이수정이 일본에서 국한문체로 번역한 ‘마가복음서언해’도 전시돼 있다. 이 성경들은 모두 진본으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입국 이전 국내에 이미 한글 성경이 나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실의 유물 대부분은 초기 성경과 찬송가, 교리서 신문 신학잡지 기독서적 등 문서들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1908년 발간된 ‘감리교회조례’를 보면 ‘간음을 범하지 말 것’ ‘사신 우상을 거절할 것’ 등 지금도 중요한 신앙 덕목이 담겨 있다.
역사실은 경주 불국사 안에서 발견돼 경교(景敎·네스토리우스교) 전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돌십자가’와 ‘금강산 경교유행 중국비 탁본’을 비롯해 천주교 수용과 박해를 나타내는 교리서와 신앙서적, 박해문서, 순교자 명부 등도 전시돼 있다. 박물관은 기독교역사실 외에도 고고·미술실, 근대화와 민족운동사실, 숭실역사실 등이 설치돼 있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4시(토요일은 10∼12시)다. 방문자들은 안내책자 2개를 받을 수 있다. A4 용지 크기의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재미있게 둘러보기’는 어린이용으로 제작돼 만화와 사진 설명이 흥미진진하다(museum.ssu.ac.kr·02-820-0752).
연세대 언더우드가 기념관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창경궁의 비원과 같은 곳이다. 연세대 학생들도 존재를 모를 정도로 학교 서쪽 안산 언덕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미국 북장로회 언더우드(원두우) 선교사의 아들 원한경 박사와 손자 원일한 박사가 살았던 사택이다. 74년 원일한 박사가 연세대에 기증했고 대학 측은 2003년 ‘언더우드가 기념관’으로 명명해 대를 이은 한국 사랑을 기리고 있다.
기념관은 원두우, 원한경, 원일한 3대 선교사의 삶과 유물을 담은 세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두우 선교사 방에는 실물 크기 브로마이드 사진이 방문객을 맞는다(사진). 맞은편에는 언더우드의 형 존 토마스가 제작한 ‘언더우드 타자기’가 비치돼 있다. 토마스 언더우드는 이 타자기 판매로 얻은 수익을 동생의 한국 선교 기금으로 사용하는 등 한국 선교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기념관 조교인 김은도 선생은 “토마스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선교를 위해 기부했다”며 “기부금은 호남 지역 남장로교 선교를 위해서도 쓰이는 등 돈을 벌었으나 돈을 사랑하지 않았던 기독교인의 자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2대 원한경 박사 방에는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책장, 타자기와 전화기 등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응접실용 탁자와 테이블도 전시돼 있다. 한국을 사랑해 한국학 관련 서적만 2800권을 모았다고 한다. 생전엔 ‘한국의 보트와 배’라는 책을 출간했다. 영어 찬송을 한국어로 개작했다. 1949년 그의 부인은 사택에서 시인 모윤숙으로 오인한 좌익청년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됐는데 원 박사는 범인들을 용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3대 원일한 박사는 해군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으며 6·25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장전에 참가, 맥아더 장군의 수석통역관으로 복무했다. 연세대 교육학 교수로 일했다. 그가 쓰던 면도기와 손톱깎이, 연필, 안경 등이 전시돼 있다. 1931년 가족이 백두산을 등반한 영상도 흥미롭다. 기념관은 방마다 QR코드가 부착돼 있어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자세한 배경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은 월∼토요일 오전 9시30분에서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단체 관람은 예약이 필수다(02-2123-7427).
이화여대 이화역사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이화역사관’은 말 그대로 이화여대의 역사를 보여준다. 학교는 창립 120년이었던 2006년, 정동에 세워졌던 최초의 이화학당 한옥 교사(校舍)를 참고로 현 역사관을 복원했다. 지난 9일 방문해보니 설립자인 미국 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이 금방이라도 맞아줄 것 같았다.
복도 벽에는 이화여대의 역사를 담은 사진 자료가 전시돼 있다(사진). 연대기적으로 구성돼 있으며 1886년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한옥 안방에 해당하는 영상실에는 역대 총장 사진과 함께 ‘이화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의 3분짜리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오래된 사진을 동영상으로 처리했는데 인물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 효과를 살렸다.
역사관의 백미는 관람 동선 마지막에 위치한 기도실이다. 6.6㎡ 크기의 공간에서 누구나 기도할 수 있다. 기도실 앞에는 ‘이화여대를 위한 기도문’과 성경, ‘이화 동창 선교사 기도수첩’이 놓여 있다. 역사관 관계자는 “이화여대가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학교인 만큼 전시 동선의 마무리에 기도실을 조성한 것”이라며 “이화에 대한 기억이나 전시실 관람기를 적을 수 있는 편지방과 함께 특색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편지방에는 원고지와 필기구가 놓여 있어 방문자 누구나 관람기를 남길 수 있다. 학교 측은 이를 기록물로 보관한다.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토요일은 9시30분∼12시)까지다. 이화여대는 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박물관을 둘러보고 역사관을 가도 좋다. 역사관 주위엔 벌써 개나리가 피었다(home.ewha.ac.kr/∼archives·02-3277-3195∼6).
지방 기독교대학·신학교에도 소중한 자료들 많아요
기독교대학이나 신학교의 기독 박물관은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다. 천안의 백석대와 고신대신대원, 대전의 한남대, 전주의 전주대가 있으며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는 의료선교 박물관이 설치돼 있다. 전문가들은 박물관 견학은 단체보다는 개인 관람이 효과적이며 박물관 소장품을 미리 알고 가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고 조언한다.
백석대 기독교 박물관은 전 세계 다양한 성경을 비롯해 성경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고고학 유물과 기독교 미술, 교회 역사와 관련된 유물 등 총 150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종교개혁이 본격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성경도 전시돼 있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community.bu.ac.kr/museum·041-550-9102).
고신 역사기념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의 역사를 비롯해 한국교회 성립 등 5가지 구역(Zone)의 전시실을 운용하고 있다. 사진과 문서 자료들이 주요 전시물이다. 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장로교 개혁신앙을 부각한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4시 문을 연다(kts.ac.kr/www/khistory·041-560-1974).
한남대 중앙박물관은 충청 지역 역사와 고고학·민속 관련 자료를 수집, 보관해 전시하고 있다.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 활동 자료와 유물도 전시하고 있다. 선교사 사진과 유품, 선교사들이 그린 풍속화, 지역 교회들의 문서 자료 등이 보관돼 있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4시(bakmul.hannam.ac.kr·042-629-8254).
전주대 호남기독교박물관은 전주대 스타타워 1층에 마련돼 있다.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기도실, 세미나실 등을 갖췄다. 미국 남장로교 7인 선교사들의 사진과 자료, 호남 지역 교회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방문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성경 이어쓰기’ 프로그램이 있으며, ‘ㄱ’자 교회로 유명한 금산교회 미니어처도 전시돼 있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063-220-3117).
계명대 동산병원 의료선교 박물관은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선교사 사택 2동을 선교박물관과 의료박물관으로 조성했다. 스윗즈 주택 내부에는 각종 성경과 기타 선교 유물, 성막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토요일 10∼12시)(053-250-7100).
글=신상목·사진=강민석 선임기자
smshin@kmib.co.kr
[미션 탐방-기독교 대학 박물관] 영성 충전소, 박물관은 살아있다
입력 2016-03-11 20:33 수정 2016-03-11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