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세돌 심리까지 읽고 흔들었다… 김찬우 프로 6단 관전평

입력 2016-03-09 22:23 수정 2016-03-10 00:25
김찬우(사진) 6단은 프로기사이면서 'AI바둑' 대표다. 국내에서 드문 인공지능 바둑 전문가다. 그에게 이번 대국 관전평을 들어봤다.
오늘 기어이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구글의 알파고가 앞으로 20∼30년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세돌 9단을 이기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돌을 가린 결과 이 9단의 흑번으로 시작됐는데 양화점을 들고 나왔습니다. 7번수에서 이 9단이 국면을 비틀었는데 이 수는 좋지 않았습니다. 알파고를 상대할 때는 정수로 대응하면서 포석에서 느린 부분을 추궁하며 이득을 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흑 17번수까지의 결과는 일반적으로는 흑이 이득이어야 했지만 흑 7번수가 이상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백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은 결과가 됐습니다.

이어 알파고가 백 18번수라는 통렬한 한 수로 초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9단이 흑 19번수로 중앙으로 한 칸 뛰었을 때 알파고가 우변을 하나 더 밀고 중앙에 모자를 씌워서 앞서 나갔습니다.

알파고의 강점은 이창호 9단을 닮은 균형감각과 전면전이 붙었을 때 보여주는 막강한 전투력입니다. 이 9단이 수습을 위해 흑 21번수로 붙였는데 이때 알파고의 대응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백 22번수로 무겁게 만들고 강하게 치받은 백 24번수가 모두를 놀라게 한 강수입니다.

여기서 물러서서는 곤란하다고 본 이 9단이 맞서 대응하며 대국은 전면전으로 흘러갔습니다. 다만 국면은 알파고에게 유리하게 전개됐습니다. 백 46번수까지 진행되고 보니 초반에 넓게 전개해 놓은 흑돌이 사분오열돼 살기에 급급한 국면이 됐고 백이 점점 기분 좋은 흐름으로 진행됐습니다. 다행이라면 이 9단도 백의 약한 돌을 확실하게 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리한 형세를 이끌어 가던 알파고가 드디어 실수를 범했습니다. 백이 불필요하게 강수를 구사하는 바람에 흑에 기회가 돌아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백 64번수 때 이 9단이 흑 65번수로 노타임으로 늘었습니다. 흑 65번수를 흑 67번수 자리에 두고 선수를 뽑아 백 70번수 자리를 역으로 흑이 차지하면 우상에서 뻗어 나온 백 대마가 매우 약해 흑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국면이었습니다. 그런데 흑 67번수에 백 68번수가 묘수로 백이 선수를 뽑아 백 70번수에 손이 돌아와서 다시 국면은 백이 편해졌습니다.

백이 편한 가운데 중반이 진행되고 있을 때 나온 백 80번수의 보강이 완착으로 좌하귀를 받아둘 자리였습니다. 완착을 틈타 좌하에서 이득을 취하며 형세는 오히려 흑이 유리하지 않은가 싶은 상황이 됐습니다.

그런데 백 102번수가 정말 알파고가 둔 수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한 수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무리수로 보였는데 막상 놓이고 보니 흑의 응수가 만만치 않게 됐습니다.

의표를 찔린 이 9단이 장고 끝에 바꿔치기를 했는데 백이 우상귀 석점을 잡는 성과를 올려 다시 형세가 팽팽해졌습니다.

팽팽한 가운데 맞이한 종반 흑 127번수에서 이 9단의 최후의 패착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흑 127번수는 백이 둔 128번수 자리로 막아서 실리를 취해야 했는데 백이 134번 선수로 귀를 챙기고 136번수로 석점 마저 잡아서는 흑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바둑이 되었습니다.

결국 186수를 본 이 9단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돌을 거두었는데요. 끝까지 두었더라면 덤을 제하고 1∼2집 남는 국면입니다.

이 9단이 알파고에 대한 파악이 비교적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질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예상했었는데, 그런 우려가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2국에서는 알파고에 대한 분석이 된 상태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2국의 승부가 앞으로 벌어질 4판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9단이 이기려면 초반 포석에서 정수대로 두면서 알파고의 포석의 느슨함을 응징하며 조금씩 이득을 취하고 우세한 상태에서 알파고의 무리수를 기다려 응징하는 길이 필승의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미세한 상태에서 종반으로 가면 사람은 체력저하로 인한 실수가 나오는데 알파고는 그런 실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중반 이후에 미세한 승부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2국부터는 이 9단이 선전할 것을 믿습니다.

김찬우 프로 6단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