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 살리는 ‘농촌 유학’, 통폐합 정책에 위기

입력 2016-03-10 04:00
강원도 양구군 원당초등학교 학생들이 7일 방과후 수업을 마친 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25명이다. 축구를 끝내고 배꼽유학센터로 돌아온 ‘농촌유학생’ 추명수군이 센터 마당에서 기르는 닭과 오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작은 사진).
지난 7일 오후 아담한 학교 건물에 비해 드넓은 천연잔디 운동장 곁으로 노란 스쿨버스 한 대가 들어섰다. 공을 차던 9명이 버스로 뛰어올랐다. 이재현(11)군과 쌍둥이 고운찬, 원찬(9)군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경기 결과를 자랑하기 바빴다. "우리 셋이 여섯 골 넣었어! 형이 안 넘어졌으면 일곱 골인데." 재현이는 서울 신도림에서, 쌍둥이는 인천에서 이곳 강원도 양구군 원당초등학교로 '유학'을 왔다. 아이들을 하나 둘 내려준 스쿨버스는 종점인 배꼽산촌유학센터로 향했다.

도시 아이들, 농촌학교를 살리다

‘농촌유학’은 도시 아이들이 6개월 이상 농촌 지역 학교를 다니며 마을 주민들과 시골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0년부터 예산을 지원했다. 지역사회는 소규모 학교 활성화로 활력을 찾고, 도시 아이들은 자연을 만끽한다.

배꼽산촌유학센터는 한반도의 정중앙 ‘배꼽’인 양구군 동면에 2011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초등학생 7명, 중학생 5명이 머물고 있다. 아이들은 무기력, 산만함, 내성적 성격 등을 이겨내려고 산골로 모였다. 차로 10분 거리인 원당초등학교, 대암중학교에서 공부한다.

이곳 생활은 오케스트라 활동, 요리 체험, 텃밭 가꾸기, 요양원 봉사 등으로 다양하게 채워진다. 아이들은 길게는 5년씩 머무르며 삭막한 도시를 잊는다. 패스트푸드 대신 산나물 맛을 알아가고 제 손으로 기른 채소로 밥상을 차린다.

부끄럼 많고 소극적이던 추명수(12)군은 지난해 7월 양구 생활을 시작한 뒤 180도 달라졌다. 강아지 복실이, 고양이 흰고, 닭과 오리 등 센터 마당에서 사는 동물을 책임지는 당번을 자처하더니 이젠 누구보다 인사성 밝은 아이가 됐다. 명수는 “경기도 안양에 살 때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텃밭에서 감자를 기르고 고추를 따먹는다. 양구가 너무 좋다”고 했다. 외동아들인 재현이는 “형, 누나, 동생이 잔뜩 생겨 행복하다.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알고 지내는 게 재미있다”고 거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도, 마을도 자랐다. 올해 61회 졸업생을 배출한 원당초등학교는 한때 400명에 이르던 전교생이 25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도시 아이들 덕분에 매년 감소하는 전교생 수를 간신히 유지한다. 모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은 정병주 교사는 “6학년은 두 명뿐인데 모두 유학생이다. 유학 온 아이들 덕에 학교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다른 유학센터들도 마찬가지다. 강원 춘천 별빛산골유학센터 초등생 20명은 송화초등학교를 다니며 전교생(52명)의 절반 가까이를 채운다. 유학센터가 문을 열던 2010년 전교생 15명이었지만 이제는 학년별로 6개 반을 갖추고 있다. 강원 횡성의 사재산농촌유학센터의 아이들은 안홍초등학교를 살렸다. 전교생 40명 안팎이던 이 학교는 올해 유학생 9명 덕분에 전교생 61명이 되면서 통폐합 대상에서 벗어났다.

농식품부가 농촌 유학을 지원하기 시작한 2010년 유학센터 3곳에 57명이던 유학생은 매년 늘어 올해 전국 21곳, 238명에 이른다. 자녀의 농촌유학을 계기로 귀촌을 결심하는 가정도 많다. 마을 이장인 김희철 사재산농촌유학센터 교장은 “지역학교는 마을을 유지시키는 매개체이며 주민들의 광장 같은 곳”이라고 했다.

농촌유학 ‘살얼음판 위기’

자리를 잡아가던 농촌유학은 요즘 농식품부와 교육부 사이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농식품부와 시·도교육청은 소규모 학교가 살아나길 바란다. 반면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 지방교육재정을 효율화하려고 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마을 활성화는 학교와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농촌을 배려해 달라는 입장을 굽힐 수 없고 교육부도 대의가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적정규모 학교 기준을 한층 강화했다. 새 기준에 따라 전국 1만1809개 초·중·고교(283개 분교 포함) 가운데 23.3%(2747곳)이 통폐합 대상이 됐다. 강원도에서만 학교 절반이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김순자 배꼽유학센터장은 “통폐합 걱정에 학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유학생을 많이 유치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폐교를 겪은 유학생들도 있다. 경북 군위 간디문화센터 유학생들은 소보중학교가 2014년 문을 닫으면서 군위중학교로 전학했다. 스쿨버스로 2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김일복 농촌유학전국협의회장은 “농식품부 지원금으로 학교가 살아나는 게 교육부 방침과 충돌하다보니 농촌유학을 홍보하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학교가 통폐합하면 유학을 중단해야 하느냐는 학부모 문의도 쏟아진다고 했다.

소규모 학교가 많은 강원, 전남 등의 시·도교육청에선 통폐합을 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하지만 통폐합 실적에 따른 지원금 지급에서 배제되는 등 재정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

교육부는 권고사항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의 적정규모 수준을 교육적 가치 측면에서도 따져봐야 한다고 보고, 최근 담당 부서를 지방교육재정과에서 학교정책과로 옮겼다”며 “농촌유학과 관련해 협업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양구=글·사진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