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암연대기] 암은 현대병?… 고대인도 암 앓았다

입력 2016-03-11 04:00
“우리 모두 언젠가는 병원 대기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앉아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때가 찾아온다.”

당신이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이유는 암일 가능성이 높다. 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암이 왜 발생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찌른 감염성 질병들은 하나의 인자로 인해 야기된 것이다. 정체를 파악해서 죽이거나 백신으로 무찌를 수 있는 적들이었다. 하지만 암의 경우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으로 인해 뒤죽박죽 엉망이 된 증상들을 비롯해 그 모든 요인들을 통째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위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 너머에 존재할 것이다. 암은 질병이 아니다. 암은 하나의 현상이다.”

뉴욕타임스 등에 우주과학 기사를 기고해 온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조지 존슨은 아내가 암 판정을 받자 암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 자기밖에 모르는 세포 하나가 사람의 몸속에서 자라나는 에일리언 같은 괴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그의 핵심적 질문이었다. 그는 수백 편의 논문을 읽고, 각종 암 세미나에 참석하고, 세계 최고의 암 전문가들을 만났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암에 대한 최신의 지식을 ‘암연대기’라는 책 한 권에 담아냈다.

우리 주변에는 암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 대부분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이 책은 알게 한다. 예컨대, 암이 현대병이라는 건 오해다. 저자는 고대사 박물관들을 뒤져 고대인들이 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암으로 고통을 받다가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암 발병률이 현대에 와서 급증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다. 암이 유전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미국으로 이주한 흑인 노예의 후손들과 그대로 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그들의 친족들을 비교해본 1950년대 연구에서 미국의 흑인들에게서 훨씬 더 많은 암이 발병한다는 게 확인됐다. 고기를 피하고 채식 중심의 저지방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비타민 C와 E 같은 항산화제를 둘러싼 믿음도, 휴대전화가 뇌종양을 유발한다는 것도, 심지어 흡연이 암의 원인이라는 것도 미심쩍은 얘기들이다.

이 책에서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것은 암세포의 성장과정이다. 세포 재생 과정에서 태어난 돌연변이 세포가 우리 몸의 수많은 방어 시스템을 통과해 어떻게 하나의 종양으로 정착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종양이 어떻게 무한한 번식력으로 우리 몸을 침탈하게 되는지 상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암과의 싸움이라는 인류의 목표가 착각이 아닌가, 의학이 암과 싸워온 방식이 완전히 틀린 게 아닌가 의심한다. 우리 몸속에서 매초 400만개의 세포가 세포분열을 하고,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불완전한 부분이 생기는 게 자연스런 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암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신체는 암이라는 존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암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암은 언제나 인류와 함께 해왔고, 암에 걸리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며, 온갖 주의사항을 제아무리 철저히 지킨다고 해도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