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딴 살림 차린 남편, 이혼 청구 허용… “혼인 실체 사라져 책임소재 무의미”

입력 2016-03-09 21:21
15년 전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가 딴 살림을 차린 남편에게 법원이 이혼을 허용했다. 오랜 별거로 혼인의 실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부부관계 파탄의 책임소재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 봤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이혼 소송의 ‘유책(有責)주의’ 원칙을 유지하되 예외 사유를 확대한 판결을 내린 이후 하급심 판단도 이런 기조를 따르고 있다.

남편 A씨는 1983년 B씨와 결혼해 자녀 둘을 낳고 18년간 함께 살았다. 그러다 2001년 직장에서 알게 된 여성과 사귀면서 집을 나가 동거를 시작했다. 그는 2006년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A씨의 부정행위가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원인”이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 판결은 2008년 확정됐다.

A씨는 5년이 지난 2013년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여전히 이혼을 원치 않았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도 이혼을 허가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이은애)는 “두 사람은 이혼하고, A씨는 위자료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부부관계 해소 상태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의 법적·사회적 의의가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그동안 관계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A씨가 생활비, 양육비 등으로 10억원 정도를 지급하는 등 부양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은 점도 감안했다.

A씨는 자신 명의의 재산이 별거 이후 형성된 것이라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했지만, 재판부는 재산의 20%를 B씨 몫으로 인정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