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취준생) 김모(28)씨는 기업에 제출할 자기소개서(자소서)에 자신을 ‘침착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예정이다. 김씨는 지난 1년간 취업 스터디, 영어학원을 오가며 취업 준비에 매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채용까지 줄줄이 서류에서 탈락하자 지난 1월 3주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김씨는 그동안 자소서에 쓸 내용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김씨는 상반기 기업공채에 제출할 자소서에 이탈리아 로마 여행 중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을 인용할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침착하게 대응했던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대학 4학년인 정모(26)씨도 지난해 8월 여름방학 한 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지난해 상반기 공채 자소서를 쓰면서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이 없다고 생각해 해외여행을 떠났다. 정씨는 “여행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경험 등을 적어 활동적인 성격을 어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어학연수와 함께 해외여행 경험이 자소서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기업들이 자소서 비중을 높이고 있고, ‘다양한 경험’을 묻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1∼2년 걸리는 어학연수에 비해 배낭여행은 부담도 적다. 공채 시즌마다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 등에는 배낭여행 경험을 자소서에 활용하는 방법을 문의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봉사활동과 여행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정부부처나 공공기관·대기업이 운영하는 ‘볼런투어’(자원봉사와 여행이 결합된 신조어) 모집에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소규모 온라인·모바일 여행사들도 저가항공 등으로 비용을 대폭 줄인 취준생을 위한 저렴한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값싼 배낭여행도 형편이 어려운 취준생에게는 먼 얘기다. 1년 넘게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황모(25·여)씨는 “돈도 못 버는데 배낭여행을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자격증 준비를 위해 휴학한 박모(26)씨도 “남들처럼 인턴이나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소서용 해외여행’ 경험담이 실제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항공업체 인사담당자는 “업계 특성이 있어서인지 배낭여행 경험이 들어간 자소서가 70∼80%는 된다”며 “경험이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는지, 지원한 업무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4대그룹 인사담당자는 “누구나 겪는 일을 특별한 경험이라며 부풀리기 식으로 작성하는 건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또, 해외여행 경험담?… 취준생엔 ‘나만의 자소서’ 기업엔 식상한 단골 메뉴
입력 2016-03-1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