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소중한 것을 지키는 용기] 폭풍우 치던 날 늙은 개를 찾아나선 소녀의 참된 용기

입력 2016-03-11 04:02
교훈조의 제목 탓에 그림조차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달린다’라는 원제가 폭풍우 몰아치는 날의 불안과 공포, 늙은 개를 찾아 헤매는 소녀의 다급함 등 그림책의 주제와 분위기를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날, 소녀 혼자 집을 지킨다. 부모는 가축과 배를 안전한 곳에 옮겨두기 위해 나가고 없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든든하게 옆에 있던 늙은 개 해링턴이 이날따라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을까. 바람이 빼앗아가 버린 게 아닐까. 바깥은 위험하지만 아랑곳 않고 소녀는 문을 밀치고 나간다. 늙은 개의 안전을 걱정하는 소녀의 마음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그림 솜씨 덕이다. 문 뒤로 보이는 커튼 자락만으로도 마을을 강타한 폭풍우의 위험이 느껴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소녀를 작게 그려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과장되게 크게 그린 한쪽 장화의 바닥에서는 온힘을 다해 달리려는 소녀의 마음이 묻어있다.

“그리고 또 달렸어요. 해링턴을 찾아 달리고 또 달렸어요. 더는 춥지도, 무섭지도 않았어요.”

마침내 덤불 밑에 쓰러진 해링턴을 찾은 소녀는 번쩍 안았지만 덩치가 커 뛸 수가 없다. 그래서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는 그 순간은 세상의 위험도 정지해 있는 것 같다.

“괜찮아, 해링턴. 내가 지켜줄게!”

소녀는 말한다. 해링턴이 날 지켜주었듯이 나도 해링턴을 지켜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따뜻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노랑색을 주조색으로 하면서 노랑색이 갖는 이중성을 주제에 잘 녹여냈다.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하면서도 위험을 경고하는 노랑색의 상반된 이미지가 교묘하게 잘 섞여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