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네덜란드를 여행한 지인으로부터 한 장의 그림엽서를 받았다. 헨드릭 아베르캄프의 ‘겨울 풍경’이란 그림이었다.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일상을 담고 있다. 운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네덜란드 앞에 붙는 ‘빙상 강국’이란 수식어는 이때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400년이 지난 현재 네덜란드 운하는 얼지 않는다. 겨울 기온 상승으로 운하를 따라 11개 도시, 200㎞를 달리는 빙상 마라톤 ‘엘프스테이든톡트(Elfstedentocht)’도 1997년을 마지막으로 19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바뀐 것은 그뿐이다. 여전히 네덜란드 사람들은 걸음마와 자전거 다음으로 스케이트를 배운다. 너나 할 것 없이 동네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네덜란드왕립빙상연맹(KNSB)의 노력 때문이다.
지난 8일(한국시간) 찾은 위트레흐트의 KNSB 사무실엔 ‘우리는 스포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합니다’란 큼지막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후원하는 KNSB이지만 기본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향했다. 후브 스눕 홍보국장은 “한 선수를 키우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KNSB는 겨울이면 곳곳에 인공 얼음으로 스케이트장을 만든다. 네덜란드 국민들이 스케이트 끈을 놓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국제대회 전용 경기장도 17개나 있는데 이곳도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 KNSB에 등록된 클럽이라면 이용료 할인 혜택 등도 받을 수 있다.
KNSB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도 전용 경기장 ‘더 베흐츠 바는’이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겨울방학이나 크리스마스 시즌 등 성수기에는 2000명 가까이 된다. 9일도 10개 클럽, 60여명의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8세 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다는 아흐디저스 클럽의 에이미(13·여)는 “겨울이면 매일 클럽 동료들과 함께 스케이트장을 찾는다”고 했다. 자이스트 클럽의 요르트(11)도 “형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보고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내겐 일상이다”고 전했다.
네덜란드에는 에이미나 요르트와 같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15만 명에 이른다. 프로팀은 5∼6개지만 아마추어 클럽은 700개가 넘는다. 이들은 모두 잠재적 챔피언이다. 실력만 있다면 누구나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다. 프로팀에 소속된 60명 정도가 대표팀 선발전에 나갈 수 있지만 누구나 도시 선발전, 주 선발전을 거쳐 이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스눕 국장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네덜란드가 강국인 데는 그만큼 인재풀이 넓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은 클럽이 많지 않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렵고 재능 있는 선수를 찾기도, 실력 있는 선수를 키우는 것도 어렵다”며 “저변을 확대해 인재풀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고 말했다.
위트레흐트(네덜란드)=글·사진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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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1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