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기력 외에 승부의 숨은 변수가 있다. 바로 ‘흔들기’ ‘비틀기’ 등 변칙 수가 그것이다. 인간은 변칙을 구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정석에는 강하지만 변칙 수에는 쉽게 대처하지 못하리란 관측이다.
인간은 초반 포석 단계에서 직관과 창의력에서 인공지능을 능가한다. 바둑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으로 지구의 원자수보다 많다. 인간의 강점인 직관력과 창의력을 살려 초반 포석을 두텁게 가져가면 인간의 승리가 유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세돌 9단이 대국 전 “알파고는 수치화하기 어려운 ‘흔들기’나 ‘응수타진’에 취약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알파고는 내가 응수타진이나 흔들기를 하면 그 가치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수를 찾느라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세계 정상급 대결에서는 정석보다 이 같은 변칙수가 늘 승리의 변수가 돼 왔다. 바둑에는 지금 당장은 손해지만 나중에는 득이 되거나, 얼핏 악수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묘수가 될 수도 있는 착점이 많다. 이런 부분에서 바로 알파고가 약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9단은 변칙수를 자주 구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변칙적인 수는 두고 싶다고 해서 두어지는 게 아니고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수여서 억지로 변칙적 수를 만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도 “변칙보다 정석으로 승부하라고 이 9단에게 충고했다”면서 “아마도 알파고는 변칙적인 수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변칙적인 수의 적응력이 알파고의 과제라면 인간 이 9단도 약점이 있다. 바로 긴장감이나 계산 실수 등 인간적인 약점이 그것이다. 인간 바둑기사들은 큰 대결을 앞두고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여 실수할 수 있는 반면 알파고는 컴퓨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
알파고 개발사인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도 “알파고는 절대 겁먹지 않는다는 강점이 있다”면서 “만약 인간 바둑기사가 이 9단 같은 챔피언과 대결을 앞둔다면 매우 긴장하겠지만 알파고는 기계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알파고는 컴퓨터이기에 피로감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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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09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