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명교회-경기 고양 능곡교회] 언더우드 정신 123년 지켜와 능곡지역의 신앙인 키우는 생명 젖줄

입력 2016-03-09 20:54 수정 2016-03-09 21:02
기도하는 손 모양을 본떠 만든 능곡교회 전면 모습. 1992년 공모를 통해 설계도를 만들고, 같은 해 6월 기공예배를 드린 뒤 1998년 100주년을 기념해 헌당 예배를 드렸다. 고양=전호광 인턴기자
능곡교회 기석기념교육관 1층 ‘능곡교회문화선교센터’에서 지난 6일 윤희경 간사가 그동안 수강생들이 만든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기가 많은 데생 수업과 유아발레수업 장면(위쪽부터). 고양=전호광 인턴기자, 능곡교회 제공
지난 6일 주일예배가 끝나고 열린 정기제직회에서 윤인영 목사(왼쪽 두 번째)와 장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토당로, 경의선 철길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1893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당시 선비 이기석 등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시작한 작은 교회였다. 인천 제물포로 들어와 평양을 오가던 선교사들의 중간기착지인 행주나루가 가까이 있어 세워진 것이다.

동네 사람 80% 정도가 교인이던 해방 이전까지 사람들은 마을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언덕 위 교회를 보면서 힘들 때나 감사한 일이 있을 때나 기도를 드리곤 했다. 명절 때 집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으면 “교회 식사 준비부터 하고 오라”고 타박할 정도로 믿음의 뿌리는 깊었다. 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고 2대째 장로나 권사로 섬기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지난 6일 창립 123주년 기념예배를 드린 능곡교회(윤인영 목사) 이야기다. 2016년 현재 교회 오른쪽엔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왼쪽엔 여전히 오래된 연립 주택들이 남아있다. 시대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변함없는 사실 하나가 있다. 교회가 능곡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인을 키워내는 생명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교회의 정면은 ‘기도하는 손’ 모양이다. 1991년부터 시무한 12대 김현택 목사 시절 100주년을 기념해 신축했다. 본당과 더불어 교회가 자랑하는 곳은 ‘기석기념교육관’이다. 교회 설립에 앞장섰던 이기석 집사를 기리는 의미다.

상당수 교회의 교육관이 주일만 반짝 쓰이고 이내 어른들 차지가 되는 것과 달리 능곡교회 교육관은 철저히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독립돼 있다. 김우경 장로는 “어른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양보하자는 취지에서 기석교육관은 전적으로 교육부서원들이 사용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교육관 최상층에는 각 교육부서 교사실도 만들어 놨다. 현재 주일학교도 1∼2학년 유년부, 3∼4학년 초등부, 5∼6학년 소년소녀부로 세분화해서 운영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키우는 데 열심인 것은 오랜 전통의 힘이다. 교회는 1948년 4월 오늘날 중고등부에 해당하는 ‘성사회’를 세워 아이들을 길러냈다. 1층 역사전시관에는 성사회 당시 썼던 주보와 예배순서지 등을 전시해 놨다. 김다열 장로는 “당시엔 학교에 못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서 학생부라는 표현 대신 거룩한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성사회라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예배가 끝난 뒤 교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새학기 기도회’를 열고 현재 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교인들이 학부모와 자녀들을 상담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교육관 1층에는 ‘능곡교회문화선교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문화센터는 2003년 교인들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시작했다. 2007년 교육관 완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수강료를 받는 전문 강좌로 자리 잡았다. 합창 및 악기 강좌, 유아 청소년을 위한 강좌, 생활 공예 문화 강좌, 스포츠강좌들이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된다. 2010년부터 상근간사를 맡아온 윤희경(49) 집사가 짜임새 있게 운영하고 있다. 특히 유아 발레, 영어 프로그램 등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사는 자녀를 둔 엄마들이 솔깃할 만한 강좌가 많다. 지난 2일 시작된 제44기 봄학기 강좌 중엔 ‘그림책으로 배우는 인성클래스’가 인기다.

그래서 “저 교회는 안 다니는데 가도 되나요”라고 묻는 이들이 많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하다 조금씩 교회 문턱을 넘나들고 아이들 먼저 주일학교에 보내다 마지막엔 부모까지 교회에 나오곤 한단다. 윤 간사는 “교회에 문화센터가 없으면 지역 사회와 분리돼 예배만 드리는 공간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문화센터를 통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교회에 한 번 더 오게 되고, 교회가 있어 이런 좋은 강좌를 들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센터가 안 믿는 이들과 교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래에 대한 투자’가 가능한 이유는 뭘까. 실제 교인 수에 비해 재정이 풍족한 편은 아니다. 이 지역은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됐고, 그러다보니 교회 주변엔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 주민들이 제법 많다.

그럼에도 문화센터 운영과 교육부서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가능한 배경엔 건강한 재정이 있다. 교회 재정이 안정적으로 집행되다보니 교회를 건축했음에도 빚이 없고,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졌다.

2013년 부임한 윤인영 목사는 “사람을 키우는 것, 잘 키워서 그들이 영향력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며 “돈만 따지면 할 수 없는 다양한 사역들을 그래도 ‘해야 한다’며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신앙을 지켜온 교인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능곡교회의 자랑 ‘투명 재정’

매월 제직회서 예산 결산, 돈 새 나갈 틈 없어


능곡교회 교인들이 오랜 역사와 신앙의 전통만큼이나 자랑스러워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교회의 투명한 재정 운영이다. “재정투명성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고 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능곡교회에선 해마다 위원회별로 주요 사업 및 예산을 수립한 뒤 정책당회를 거쳐 예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매달 첫 주 정기제직회를 열어 꼼꼼하게 결산하고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한다.

지난 6일 3부 예배 직후 열린 정기제직회에선 2016년도 2월 일반회계 수입지출 결산현황이라는 28페이지짜리 두툼한 자료가 배포됐다. 세부항목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어 돈이 새어나갈 틈이 없어 보였다.

예산을 집행할 때는 일일이 목회자의 결재를 받지 않는다. 재정위원장 이영민 장로는 “목사님은 목회에 집중하고, 상근 관리 장로가 예산을 집행한다”고 말했다. 신년 사업 및 예산 계획이 확정되면 거의 그대로 집행된다.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은 거의 없다.

윤인영 목사는 “예배 및 목회 사역에 대해선 담임목사에게 전권을 주고, 제직들이 예산 집행이라는 거룩한 짐을 져주시니 감사하다”며 “교인들이 가정보다 교회 일을 우선으로 여기고 참여해 온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 집행 절차가 투명하게 보장되니 사역에 대해 협의할 때는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등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교회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역에서 요청하는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고 해외 선교를 통해 현지에 신앙인을 키워내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교회는 2000년대 들어와 국내뿐 아니라 몽골,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지에서도 교회 개척과 건축, 사역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에선 문화센터 외에 독거노인들을 위한 ‘늘푸른대학’도 운영한다. 인근 병원과 손잡고 ‘사랑의 독감(예방)주사’ 행사도 벌였다. 매달 ‘이미용 봉사’도 한다. 윤 목사는 “과거엔 학교나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사역의 방향을 바꿨다”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