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결핵 후진국

입력 2016-03-09 17:58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병 중 하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기원전 7000년께 석기시대 화석에 결핵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결핵은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유럽을 휩쓸며 대유행했다. 병에 걸리면 50% 이상이 사망할 정도였다. 병원체인 결핵균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82년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서다.

데카르트, 칸트, 쇼팽 등 근대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결핵의 희생양이 됐다.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항결핵제가 개발되기까지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치료법 발전 이후 선진국에선 사망률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결핵은 여전히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다. 2014년 전 세계적으로 960만명의 결핵환자가 발생해 150만명이 사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결핵은 호흡기 전염병이다. 활동성 폐결핵환자에 의해 전염된다. 그렇다고 감염자들이 모두 환자가 되는 건 아니다. 면역력이 정상인 상태에서는 발병하지 않는다. 대략 10%만 발병한다. 그만큼 영양상태와 주거환경이 중요하다. 결핵이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리는 이유다.

근데 경제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결핵이 만연하고 있으니 의아하다. 1962년 국가결핵관리체계를 구축해 환자가 급감했으나 2000년 이후 내성을 지닌 변종이 나오면서 감염실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4년 결핵환자는 4만3088명, 사망자는 2305명이다. 결핵 3대 지표(발생률·유병률·사망률)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라니 심각하다.

20대 환자도 많다. 대학입시 준비나 과도한 다이어트 등으로 건강상태가 나빠진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환자가 잇따라 발생한 서울대에서는 올해 신입생부터 결핵 검진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국내 외국인 환자도 2014년 1858명으로 5년 전보다 3배가량 증가함에 따라 정부가 이달부터 결핵에 걸린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기로 했단다. 결핵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너무 비정상적이다. 근데 비정상인 것이 어디 이것뿐이랴.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