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일 한국인의 삶, 일본의 가슴을 울리다… ‘야끼니꾸 드래곤’

입력 2016-03-08 21:26 수정 2016-03-09 19:31
지난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야끼니꾸 드래곤’의 한 장면. ⓒ谷古宇正彦 신국립극장 제공
이 작품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재일교포 정의신씨.
일본 관객들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지난 7일 일본 도쿄의 신주쿠 인근 신국립극장에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이 개막됐다. 관객들은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코리안(한국과 조선 국적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의 신산스러운 삶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에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야끼니꾸 드래곤’은 1969∼71년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오히려 가족이 붕괴된 재일코리안 용길네를 그렸다. 태평양전쟁에서 팔을 잃은 용길은 전처소생의 두 딸, 재혼한 아내 영순, 영순이 데려온 딸 그리고 부부가 새로 낳은 아들과 함께 곱창집을 운영한다. 세 딸은 복잡한 연애 끝에 각각 그들의 배우자와 함께 북한과 한국으로 떠나거나 일본에 남는다. 주류사회 진입을 꿈꾸며 사립학교에 보낸 아들은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실어증을 겪다가 자살한다. 그리고 겨우 정착한 재일코리안 마을은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모두 부서진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일본 출판사 쇼가쿠칸의 편집자 니타 유키코씨는 “재일코리안의 삶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처음”이라며 “초연과 재연 때 티켓을 구하지 못해 이번에 처음 보게 됐는데, 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실감했다.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2008년 신국립극장의 주도 하에 한국 예술의전당과 공동제작돼 양국에서 초연됐다. 당시 양국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으며 전회 매진에 이어 연극상까지 휩쓰는 돌풍을 일으켰다. 용길과 영순 부부 역을 맡았던 신철진과 고수희는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요미우리 연극상 남녀 주연상을 받았다. 2011년 재공연에서도 초연의 명성 때문에 티켓 전쟁이 치열했다.

올해 ‘야끼니꾸 드래곤’ 공연은 자이니치를 소재로 정의신이 그동안 신국립극장에서 선보였던 작품 3편을 연속 공연하는 ‘정의신 3부작’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신국립극장은 ‘야끼니꾸 드래곤’(7∼27일)에 이어 2007년 초연된 ‘예를 들면 들에 피는 꽃처럼’(4월 6∼24일)과 2012년 처음 공연된 ‘파마야 스미레’(5월 17일∼6월 5일)를 잇따라 올린다. ‘예를 들면 들에 피는 꽃처럼’은 일본 여성 연출가 스즈키 유미가 연출했고, 나머지 2편은 정의신이 연출까지 맡았다. ‘예를 들면 들에 피는 꽃처럼’은 50년대 광복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이니치 남매를 중심으로 댄스홀 이야기를 그렸고, ‘파마야 스미레’는 60년대 폐쇄가 결정된 규슈의 탄광에서 일하던 자이니치 가족을 다뤘다.

최근 한·일 관계가 좋지 않고 헤이트 스피치가 판치는 일본에서 최고 극장인 신국립극장이 이번 기획을 내놓은 것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정의신은 “3부작을 통해 재일코리안이 왜 일본에 남아서 살고 있는지 일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역사 교과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재일코리안의 존재와 이면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배우들을 모두 새롭게 캐스팅했다. 용길 역에 지난해 ‘조씨고아’로 각종 연극상의 남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하성광, 영순 역에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으로 베테랑 배우 겸 연출가인 남미정을 비롯해 한·일의 노련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전에 비해 정의신 특유의 웃음 코드가 더욱 강해진 게 특징이다.

정의신은 “이번 작품이 처음 공연됐을 땐 재일코리안 가족을 소재로 한 특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과 호주 등에서도 리딩 공연으로 읽혀져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재일코리안의 이야기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이나 이민자들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도쿄=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