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왜 바둑에 집착하나… 비정형 데이터 처리 위해 종합·직관적 사고 도전

입력 2016-03-08 22:20

바둑은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다. 알파고가 도전 과제로 바둑을 선택한 이유다. 그동안 인공지능(AI)은 발전을 거듭해 체스를 정복했다. 하지만 바둑은 체스보다 훨씬 복잡해 AI가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체스의 경우 한 지점에서 둘 수 있는 다음 수가 평균 20개 정도다. 반면 바둑은 200개가 넘는다. 바둑판을 배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으로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다. 체스가 논리적 판단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면 바둑은 전체적인 형세를 파악하고 흐름을 읽어가며 수를 내다봐야 하는 경기다.

AI는 처리 과정이 명확하게 정해진 데이터에는 매우 강하다. 사칙연산은 단위에 상관없이 문제가 주어지는 즉시 풀어낸다. 문제 해결 과정이 명확하게 체계화된 일이라면 AI는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데이터를 ‘정형 데이터’라고 한다.

실제 세계에선 정형 데이터보다 명확하지 않은 정보가 더 많다.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AI가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인간은 강아지를 보면 강아지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귀엽다’ 같은 감정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사전에 강아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정형화해주지 않으면 강아지를 강아지로 판단하지 못한다. 모호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비정형 데이터’라고 한다. AI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형 데이터뿐만 아니라 비정형 데이터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AI 플랫폼 ‘왓슨’을 개발한 IBM 측은 8일 “‘정돈된’ 게임 영역에 대한 연구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혼돈된’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인간 수준의 인지능력을 지닌 자율적인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는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AI는 그동안 체스 같은 보드 게임을 수행할 때 ‘탐색 트리’ 기능을 활용했다. 다음 수에 가능한 위치를 탐색해 가장 적당한 수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인 바둑에서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인간을 상대할 수 없었다.

구글의 인공지능 회사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인간처럼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고급 탐색 트리와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결합했다. 심층 신경망은 수백만개의 신경세포와 같은 연결고리를 포함하는 12개의 ‘프로세서 레이어(처리 단계)’를 통해 바둑판을 분석한다. ‘정책망’이라고 부르는 신경망이 다음 수를 선택하고, ‘가치망’은 승자를 예측한다. 진짜 인간처럼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건 아니지만 비슷하게 모방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한 것이다.

알파고는 3000만개 이상의 움직임에 대해 훈련을 했으며 57%의 확률로 사람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알파고는 자체 신경망끼리 수천만번 바둑을 두고, 바둑 기보를 학습하며 실력을 키워왔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AI가 인간의 직관적 사고를 얼마나 모방하는지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 앞으로 AI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AI가 지금보다 더 인간다운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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