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의 시 ‘땅끝’이다. ‘살아온 날들’을 데리고 오는 이곳은 전남 해남이다. 육지의 끝이라서 땅끝이다. 끝은 곧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 땅이 거기서 끝난다고 땅끝마을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반대로 보면 그곳에서 우리 땅이 시작한다. 땅끝마을은 한반도를 닮았다. 끝을 보기 위해 또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수많은 발길이 땅끝으로 찾아든다.
한반도의 첫 봄이 시작되는 곳, 땅끝 해남에는 어느덧 바다를 건너온 봄바람이 뭍의 생명에 파릇파릇한 새 숨을 불어넣고 있다. 봄을 준비하는 황톳빛 들녘에서도 꽃들이 향기를 내뿜고, 따스한 훈김이 느껴진다. 봄꽃도 하나 둘 망울을 터뜨리며 본격적인 봄을 예고하고 있다. 땅끝바다와 어우러진 노란 갓꽃과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애잔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동백, 화사하다 못해 눈부신 봄의 여왕 매화까지. 해남의 봄은 온통 빛고운 꽃들의 향연이다. 방울방울 터지는 꽃망울의 웃음을 따라 해남 땅 이곳 저곳에서 새봄의 축제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먼저 땅끝으로 향했다. 땅끝바다가 마주보이는 사자봉 정상에는 2002년 횃불 모양의 전망대가 설치됐다. 짙푸른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아련한 섬과 오가는 고깃배, 노을 물드는 바다 등 그림 같은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올라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땅끝의 또다른 명물이다. 4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자 백일도·흑일도가 길게 누워 있다. 보길도, 노화도, 어룡도, 장구도, 소안도, 완도도 한눈에 잡힌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이 가깝게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땅끝 지점을 가리키는 땅끝탑이 서 있다. 북위 34도17분21초의 한반도 땅끝을 알리는 세모꼴의 땅끝탑 주변은 배를 형상화한 데크가 마련돼 있으며 아래 해변쪽으로 희망의 샘 등이 조성돼 있다. 해마다 80여만명이 이곳을 찾아 망망대해에 맞서 또다른 희망을 담아간다. 땅끝 해안에 깔린 나무데크 숲길이 운치를 더한다. 길은 중간 중간 해안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쉼터가 있다. 쪽빛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땅끝 주변에는 고운 모래로 이뤄진 유명 해수욕장이 곳곳에 위치해 있고 체험어장, 해양자연사 박물관 등도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이다.
갈두리 선착장에서는 노화도와 보길도를 오가는 연락선을 탈 수 있다. 선착장 앞 맴섬은 일출 명소. 두 개의 바위섬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는 풍광이 기막히다. 1년에 단 두 번, 2월과 10월에 볼 수 있다.
백두산의 맥이 지리산을 거쳐 한반도의 최남단에 이르러 융기한 곳이 두륜산이다. 여섯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이어진 두륜산은 동남쪽의 두륜봉, 노승봉, 가련봉을 잇는 남성적 경관과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을 잇는 낮고 완만한 경사의 여성적 이미지가 혼합돼 있다. 두륜산을 등산하고자 한다면 매표소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좋다. 대흥사까지 이어진 4㎞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은 아름다운 계곡과 난대림으로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두륜산은 산행코스가 험하지 않아 3∼4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유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은 등산객들 사이에서 첫손가락 꼽을 정도로 절경이다. 아침에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면 정상에서 일출의 감동을 맛볼 수도 있다.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고계봉 정상까지 1.6㎞의 거리를 가는 두륜산케이블카를 이용해도 된다.
봄의 전령은 뭐니뭐니해도 꽃이다.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에는 국내 주류업체가 운영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매실농원이 있다. 46만㎡(14만평)에 이르는 넓은 들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1만4000여 그루의 매실나무가 무료 개방된다. 터널을 이룬 매화꽃 사이로 가족과 연인 등이 은은한 향기에 취해 꽃그늘마다 돗자리를 펴고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홍매, 백매, 청매 등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너는 내운명’ ‘연애소설’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오는 19∼20일 이곳에서 매화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
끝이건 시작이건 계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땅끝에 서보는 것도 좋겠다. 따뜻한 봄바람에 힘겨웠던 겨울을 떨쳐버리고 새 다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행메모
‘명량해전’ 울돌목 우수영관광지… 윤선도유적지·공룡화석지도 볼 만
서해안고속도로 목포톨게이트를 지나 죽림분기점에서 서영암IC·남악 방면으로 나가 2번 국도를 따라 가다 월산교차로에서 진도·완도·해남 방면으로 우회전해 13번 국도를 탄다. 이어 성매교차로에서 806번 지방도로를 타고 끝까지 가면 땅끝마을에 도착한다.
우수영관광단지에 가면 진도대교와 울돌목을 볼 수 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우항리 공룡화석지, 고천암호 철새도래지, 해양자연사박물관, 허준 촬영지도 있다.
해남의 식당은 어느 곳이나 맛집이다. 특유의 불맛으로 떡갈비 정식을 내는 천일식당(061-535-1001)이 많이 알려져 있다.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한옥에서 영업하는 땅끝 기와집(061-534-2322)이나 한성정(061-536-1060)도 소문났다. 해남읍내에서는 군청 인근 민속촌(061-536-4500)이 유명하다. 게장과 생선구이 등이 별미다. 송지면 소재 중앙식당(061-533-2146)은 남도백반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해남=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