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국립병원 9층 뇌신경센터 회의실엔 커다란 한국산 원목 테이블이 66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판자 일곱 조각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 황갈색 니스를 칠한 테이블에서 매일 아침 의사들은 그날의 진료 일정 등을 논의한다.
이 테이블은 뇌신경센터 의사들 사이에서 ‘명예의 전당’으로 통한다. 테두리엔 의사 80여명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최소 1년은 근무해야 이름을 올릴 자격이 생긴다고 한다. 그중에는 ‘EB’라는 알파벳 두 글자가 선명하다. 65년 전 이 테이블을 한국에서 가져온 고(故) 에두아르트 부슈(Eduard Busch·1899∼1982) 박사의 이니셜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덴마크 정부는 유엔 회원국 중 처음으로 한국에 병원선 ‘유틀란티아호’를 파견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 10월까지 2년 반 남짓 한국에 머물며 유엔군은 물론 전쟁고아 등 한국 민간인 6000여명을 돌봤다.
덴마크 정부는 유틀란티아호 의료진을 최고 수준으로 선별했다. 여기서 치료받은 유엔군 부상병 5000여명 중 사망자가 29명에 그치는 등 다국적 의료진 가운데 가장 솜씨가 좋은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 유엔군 병사들이 전장에 나가면서 자기 군번줄에 “부상당하면 유틀란티아호에서 치료받게 해 달라”는 메모를 붙였을 정도였다.
의료진 중에는 신경외과 전문의 부슈 박사도 있었다. 당시 덴마크 전역을 통틀어 둘밖에 없었던 신경외과 의사 중 한 명이었다. 신경외과 분야 최고 권위자였던 미국의 하비 쿠싱(1869∼1939) 박사의 제자로서, 덴마크 국립의료원 뇌신경센터를 창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1951년 3월 부산항에 입항한 유틀란티아호는 같은 해 8월 냉난방 시설이 악화돼 일단 본국으로 귀환, 1차 취항을 마쳤다. 덴마크 의료진과 함께 일했던 한국 의사들은 떠나는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한국산 원목을 선물했다. 이를 소중히 여긴 부슈 박사는 이 원목을 유틀란티아호에 실어 덴마크에 가져와 테이블을 만들었다. 한국에서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테이블 사연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건 주덴마크 한국대사관이 최근 유틀란티아호 의료진을 기념하기 위한 ‘유틀란티아홀’ 건립을 준비하면서다. 대사관이 관련 자료와 유물을 수집하던 중 테이블에 얽힌 사연을 지난 1월 전해 들었다고 한다. 마영삼 주덴마크 대사는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유틀란티아호 파견은 덴마크 외교사에서 자랑스러운 한 장(章)”이라면서 “하지만 참전용사 중 생존자가 거의 남지 않아 자라나는 세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덴마크 국립의료원은 인근에 새 건물을 지어 확장·이전할 계획이다. 뇌신경센터 의사들이 가장 중시하는 요구사항은 ‘한국 테이블을 놓을 수 있도록 자리를 확보해 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단독] 한국산 원목 테이블이 66년째 덴마크 국립병원 회의실을 지키고 있는 사연은?
입력 2016-03-08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