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함께 식사하며 열심히 노력해도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중증의 자폐증을 가진 아들의 엄마다. 친구 부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을 나와 남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에 있고 친구는 약국을 운영하며 세상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다. 아들의 자폐증이 발현되지 않았다면.
평화와 행복만 지속될 것 같았던 친구의 삶에 씌워진 벗겨낼 수 없는 굴레, 자폐아의 엄마. 아이가 고교를 졸업하기까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옥 같은 삶에서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 밑에 쌍둥이 아들들은 대학 입학 문제로 다시 한 번 친구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겼다. 한 아이는 간신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한 아이는 지방대학으로. 좌절을 모르고 잘나가던 삶에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의 일은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단다.
자폐가 뭔지도 잘 모르던 때 아침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눈을 뜨며,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현실을 외면한 채 낳은 자식이 아니라면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과 편견에 상처받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준 것은 바로 종교의 힘이었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가득 부어달라고 기도했더니 고통 중에도 엄마로서의 자리를 잘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솟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온 우주 안에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한 사람,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메마르고 거친 모래사막처럼 황량해진 엄마의 가슴에 심겨진 결코 시들지 않을 사랑의 꽃나무가 된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자존심을 최고로 여기며 미성숙한 철부지 어른으로 살았을 텐데 수많은 고난의 세월을 지나 지금은 자폐아들 때문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친구의 마음이 참 고맙고 예쁘다.
김세원(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김세원] 가슴으로 살아내는 세상
입력 2016-03-08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