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무전기 하나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 1999년 사건 발생 당시를 수사하는 형사와 2015년 재수사에 들어간 장기미제수사전담팀 형사가 무전기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실을 밝혀낸다. 판타지 요소가 강한 추리극 tvN ‘시그널’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드라마,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시그널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는 사건들이다. 장르는 판타지인데 다루는 이야기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수준이다.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대형 사건·사고와 닮은 일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시청자들을 현실로 끌어당긴다.
시그널의 첫 번째 사건은 ‘김윤정 유괴 사건’이다. 극 중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어내고, 장기미제수사전담팀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사건은 1997년 박나리양 유괴사건을 연상시킨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된 것도 극의 배경이 되는 시점과 일치하는 지난해였다. 1999년 5월 대구에서 벌어진 김태완(당시 6세)군 황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2015년 7월에야 법이 개정됐다.
김혜수(차수현 역), 이제훈(박해영 역) 등으로 꾸려진 장기미제수사전담팀은 첫 사건으로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을 재수사한다. 이 사건은 국내 최대 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86∼1991년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이 사건은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시그널에서도 이 사건은 골치 아픈 장기미제 사건이었다. 하지만 무전기 공조 수사가 빛을 발하면서 과거 시점에 사건이 해결돼 미제 사건으로 남지 않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달라지는 비현실적인 일이 생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범인을 잡았다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사건은 ‘인주 여고생 성폭행 사건’이다. 드라마 속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벌어진 남자 고교생들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닮은꼴이다. 경찰과 가해자 측으로부터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았다는 점, 가해자 수가 많은데도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 오히려 피해자를 손가락질했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성폭행 사건은 공소시효 폐지에 적용도 되지 않는다. 흐지부지 종결된 밀양 사건은 시그널을 계기로 다시금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사건 당시 가해자를 옹호했던 여고생이 현직 경찰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이밖에 부유층만을 노렸던 ‘대도 조세형’을 연상시키는 ‘대도 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한영대교 붕괴사고’도 등장한다.
문수정 기자
드라마 ‘시그널’ 내용은 리얼이네!
입력 2016-03-0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