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60) 엔니오 모리코네와 007

입력 2016-03-07 17:47
영화 ‘007 스펙터’ 포스터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특징이라면 메인 MC를 비롯해 식장을 장악한 ‘흑인 파워’였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오리지널 음악상과 주제가상 부문이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와 007. 물론 007의 경우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긴 하다. 그러나 두 번 다 2010년대에 나온 ‘최신작’들이었다.

사실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하는 대부분의 007 주제가들은 영국의 거장 영화음악가 존 배리가 만든 ‘옛날’ 것들이다. 우선 가장 유명한 007 음악인, 권총의 총구 속에서 제임스 본드가 총을 쏘는 오프닝 시퀀스에 깔리는 시그니처 뮤직. 서프 록 스타일에 전기기타의 리프, 그리고 브래스가 믹스된 이 유명한 음악은 공식적으로는 몬티 노먼이 작곡자로 돼 있으나 이를 편곡해 현재 우리 귀에 익숙한 것으로 만든 이는 존 배리다. 뿐인가. 매트 몬로가 부른 감미로운 멜로디의 ‘From Russia with Love’,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가장 ‘슬픈’ 007 음악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여왕폐하의 007) 등을 비롯해 그는 모두 11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오리지널 음악을 담당했다.

그런 그가 007 음악으로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물론 배리는 다른 영화음악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그것도 무려 4회나. ‘야생의 엘자(1966)’ ‘겨울 사자(1968)’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늑대와 춤을(1990)’.

이에 비해 ‘영화음악의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제야 오스카상을 받은 건 만시지탄이다. 60년 동안 500편의 오리지널 영화음악을 작곡한 이 작곡가는 올해 87세로 오스카상 경쟁부문 최고령 수상자다. 고령에도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작업했다. 그는 2003년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를 그린 일본의 TV 대하드라마 ‘무사시’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음악가에게 우리 영화나 TV 음악을 의뢰해볼 수는 없을까. 더 늦기 전에.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