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심은경(21)은 충무로의 ‘최연소 흥행퀸’으로 불린다. 736만 관객을 모은 ‘써니’(2011)에 이어 1232만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865만을 불러들인 ‘수상한 그녀’(2014)로 연달아 흥행홈런을 쳤기 때문이다. 다소 어리바리하면서도 깜찍하고 코믹한 캐릭터가 그의 매력이다. 그런 그가 추적 스릴러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의 원톱 주연으로 세고 강한 역할에 도전했다.
지난 3일 시사회 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서 만난 그는 “캐릭터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내 연기가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완전히 다른 장르의 작품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완성본을 보니 아쉬웠어요.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메인 포스터에는 제 얼굴만 크게 나와서 괜히 쑥스럽고 부끄러웠어요.”
심은경은 극 중 형사 아빠를 죽인 살인범을 15년 동안 기다리는 소녀 희주 역을 맡았다. 순수와 잔혹의 양면성을 지닌 희주와 일찌감치 얼굴을 드러낸 범인의 7일간 쫓고 좇기는 스릴이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런데도 못내 아쉽다는 건 그만큼 욕심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는 “사실 희주를 100%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한 거다.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의 자책이 이어졌다. “이전 작품들이 성공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 또는 ‘온실 속 화초’ 같았다고나 할까요? 인기가 당연한 줄로 알았던 거죠. 위만 보고 달리다 보니 연기에 대한 본질을 잃어버린 채 살았어요. 처음 연기했던 시절엔 너무 행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조건 잘해야 돼’ ‘성공해야 돼’ ‘이거 안 되면 다 끝나’ 등등 이런 생각만 한 거죠.”
그래서 변신을 시도한 이번 작품은 스릴러의 묘미인 반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소녀로, 복수를 꿈꾸며 살인도 불사하는 무서운 아이로 이중적인 캐릭터를 선보인 연기는 주목할 만하다. 그가 얼마나 연기에 몰두했는지 범인의 목을 조르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 김성오가 기절한 것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김성오는 갈비뼈가 드러나는 흉악범을 연기하기 위해 4주 만에 16㎏을 감량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심은경에 대해 그는 “나를 정말 살인범으로 보는 건지 매서운 눈빛으로 변해서 ‘타고난 친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심은경은 “‘수상한 그녀’의 할머니는 엄마를 통해 이해했는데 살인마는 경험이 없어 선배님과 한판 붙을 때 감정을 제대로 못 살려 미안하다”고 했다.
물에 빠지고 산을 뛰어다니고 범인과 사투를 벌이는 액션 장면을 보면 여배우로서 힘들었을 것 같다. “육체적인 부분은 견딜 만했어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옥상에서 엄마가 사는 집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벌벌 떨었지만요. 희주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형사반장 역의 윤제문 선배님이 늘 옆에서 격려해줘 큰 힘이 됐어요.”
영화는 희주의 대사를 통해 주제를 얘기한다. “정의란 무엇일까요? 악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심은경은 “영화 ‘렛미인’을 보면 주인공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지만 동정이 간다”며 “선과 악을 떠나 ‘내가 곧 정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희주를 통해 범죄는 어떻게 생겨나고 처단되는지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상영 중인 ‘로봇, 소리’에서 앙증맞고 귀여운 로봇 목소리를 연기한 그는 ‘걷기왕’ ‘궁합’ ‘조작된 도시’ 등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민식과 호흡을 맞추는 ‘특별시민’ 촬영도 상반기에 들어간다. 드라마 ‘대장금’으로 데뷔해 13년째 활동 중인 20대 여배우로선 독보적이다. “이렇게 바쁜데 연애는 언제 하느냐”고 묻자 “영화랑 열애 중”이라며 활짝 웃었다. 1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08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순수와 잔혹 사이, 수상한 그녀… 추적 스릴러 ‘널 기다리며’ 원톱 주연맡은 심은경
입력 2016-03-0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