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차 20만원이라던 업주, 단속반 뜨자 “무슨 일 있나요”… 서울 연신내 불법 유흥주점 합동 단속

입력 2016-03-07 04:02 수정 2016-03-10 15:03
은평구·은평경찰서 합동단속반이 3일 서울 연신내역 일대에서 불법행위 의심 업소에 들어가고 있다.
최광현 은평구 식품위생팀장이 유흥주점 영업허가 취소 처분을 받은 업소에서 냉장고에 가득 들어 있는 술병을 살펴보고 있다.
한 업소에서 손님이 단속에 반발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 남성은 경찰관을 머리로 들이받아 입건됐다.
“2차는 20만원인데요, 요즘은 단속이 심해서 단골만 받아요.”

밖에서 보기엔 평범한 노래방이었다. 2일 늦은 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의 지하 1층 A노래방에 들어섰다. 남자 종업원은 술을 팔고 도우미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2차’(성매매)도 가능하단다. 다만 오늘 처음 온 손님은 힘들다고 했다. 그는 요즘 단속이 심해 가게 사장이 내린 ‘특별지시’라고 덧붙였다.

이 노래방은 지난해 청소년 성매매 및 유흥접객원 고용으로 영업허가가 취소된 곳이다. 지난 3일 오후 10시부터 4일 오전 2시30분까지 은평구와 은평경찰서는 불법영업 유흥업소 합동단속을 벌였다. 기자는 단속 전날에 손님을 가장해 단속 대상 4곳을 미리 둘러봤다. 이어 합동단속에 동행했다.

“여기 술잔은 왜 있습니까”

“단속 나왔습니다.” 3일 오후 11시쯤 A노래방에 들이닥친 단속반은 우선 방문을 모두 열어 영업 실태를 확인했다. 술을 팔고 있는지, 접대부가 있는지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은평구 공무원들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손님은 없었다.

‘2차는 단골만’이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렸던 업주는 종업원의 연락을 받고 뛰어 들어왔다. 그는 “무슨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지난해 영업허가가 취소되자 이 업주는 ‘영상·음반제작사업자’로 등록한 채 상호도 안 바꾸고 그대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영상·음반제작사업자는 노래방 같은 시설에서 음원 녹음이나 영상 녹화를 할 수 있다. 술을 팔거나 접대부를 부를 순 없다. 이 업주는 기존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며 ‘무허가 유흥주점 영업’을 계속해온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기는 힘들었다. 위반 사항을 확인하려면 술을 마시는 장면이나 접대부를 고용하고 있는 장면을 직접 촬영해 증거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허가 취소에 맞서 업주들이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복도에 있는 냉장고에 맥주와 양주가 가득 했다. 단속반원이 “여기 술은 왜 있나요?”라고 묻자 업주는 “전에 있던 겁니다. 아직 못 치웠어요”라고 했다. 방 안 탁자에 양주잔이 엎어진 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럼 여기 술잔은 왜 있습니까?” 단속반원이 재차 물었다. 업주는 입을 닫았다. ‘간접 증거’는 찾았지만 위반사항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심증뿐이다.

“유흥주점은 취소됐어요. 법에 맞게 운영해주세요. 저희 계속 나올 겁니다.” 단속반은 주의를 주고 떠났다.

“내 아내한테 왜 그러는 거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뒤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꼼수’도 여전했다. 일반음식점은 술을 팔 수 있다. 다만 가게 주인이 동석해 술을 따르거나 접대부를 고용할 수 없다. 단속반이 들어 닥치자 여자 주인은 황급히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50대 남성 옆에는 접대부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같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단속을 나왔단 소리에 50대 남성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손님은 문제없습니다. 저희는 업주를 감독하러 온 거예요.” 한 구청 직원이 설명했다. 평소 이 가게를 눈여겨봐 왔다는 다른 구청 직원은 “저 여자분 이전에도 봤다. 아무래도 접대부인 거 같다”며 여성에게 “혹시 손님이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남성은 “내 아내한테 왜 그러는 거요”라며 벌떡 일어났다. 구청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그는 말리는 경찰관을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다. 경찰관의 입술에서 피가 났다. 결국 그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제야 “아내는 아니고 애인이에요”라고 둘러댔다.

밤에 단속을 하다 보면 술에 취한 손님들의 항의를 거세게 받다가 험한 일을 자주 당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에 협조를 구해 함께 단속을 나온다.

구청과 업주의 ‘술래잡기’

가게 이름을 교묘하게 만들어 ‘눈속임’을 하기도 한다. 이날 단속에 적발된 한 업소는 ‘○바’라고 한글로 적힌 간판을 내걸었다. 간판에는 영어 표기와 함께 한글 설명도 달렸다. 하지만 ‘바’는 마치 술을 전문적으로 파는 ‘바(bar)’로 읽히기 십상이다. 이 업소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했다. 술을 팔 수 있지만 접대부 고용 등은 안 된다. 구청 직원은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방 2개에 문이 설치돼 있었다. 단속반은 “유흥접객을 하는 곳으로 보여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 업소는 ‘시설기준 위반’으로 적발됐다. 업주는 “방문을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합동단속은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약 4시간 동안 업소 13곳을 확인했다. 영업허가가 취소됐는데 버젓이 영업을 하는 5곳, 일반음식점인데 무허가로 유흥주점 영업을 하는 1곳, 시설위반 1곳을 잡아냈다.

최광현 은평구 식품위생팀장은 “응암오거리 불법퇴폐업소 33곳의 경우 지난 2년 동안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단속해 지금 한 곳도 남지 않았다”며 “몇 군데 적발하지 못해도 (주변 업소에서) 다들 지켜보고 있을 거다. 아무도 단속하지 않으면 불법영업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