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주최로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작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김경남(67) 목사의 책 ‘당신들이 계셔서 행복했습니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쟁쟁한 교계 인사 120여명이 모여 김 목사와 함께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념회 다음날 종로5가 한 카페에서 만난 김 목사는 “은혜를 갚으려 쓴 책인데, 출판기념회로 또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참석자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책을 쓴 동기도, 책의 내용도 모두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 사람들은 이 책을 ‘보은기(報恩記)’라고 부른다.
2013년 허리통증 치료차 전남 여수에 머물던 중 길에서 쓰러져 죽을 뻔한 ‘사건’이 집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두 달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귀중한 역사를 내 기억 속에만 묻어둔 채 갈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치열하게 지원했던 독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양심적인 기독인들과 그들의 활동을 기억에 의존해 페이스북에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서울대 법대와 한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87년 9월부터 92년 1월까지 ‘한국민주화기독교동지회(민주동지회)’ 동경자료센터 소장으로 지냈다. 당시 그의 임무는 한국에서 보내준 정세 자료를 바탕으로 월간 ‘민주동지’를 펴내고 이를 영어로 번역해 해외 교회에 보내는 일이었다. 그는 “미국연합장로회, 캐나다연합교회 등 해외 교회로 보내면 각국의 재정담당기관들이 모금을 해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는 1970년대 초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도시농어촌선교부 간사였던 오재식 박사와 NCCK 총무였던 김관석 목사의 노력으로 시작됐던 국제사회의 한국 민주화운동 지원 활동, ‘라운드 테이블’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는 “오 선생님이 하던 일을 80년대 들어 내가 마지막으로 이어받았던 것”이라며 “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그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알고 기록을 남겨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정보기관이나 경찰에 언제 잡혀갈지 몰라 증거가 될 수 있는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며 “특히 당시 운동권 정서상, 반미·반일 정신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자료들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국사편찬위원회로 보냈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여전히 창고에 잠자고 있다.
김 목사는 “민주화운동의 공로를 돌이켜 평가해보면 3분의 1은 국내에서 투옥되고 돌아가신 활동가, 3분의 1은 이들을 변론하고 이론적 토대를 세웠던 인권 변호사, 마지막 3분의 1이 해외의 양심 있는 인사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한국을 도왔던 ‘라운드 테이블’ ‘한국 민주화 일본기독자긴급회의’ 등의 해외조직과 더불어 김 목사가 ‘보은’의 의미에서 펼쳤던 재일한국인 차별 철폐를 위한 한·일국제심포지엄, 인도 달릿교회 지원사업, 버마 주민조직 교육 활동 등도 함께 수록했다. 김 목사 개인의 삶에 대한 회고와 전남 여수에서 요양하면서 민주화운동 때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을 초청해 함께 보낸 따뜻한 시간에 대한 기록도 담았다.
김 목사는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민주화 운동을 펼쳐야 하는 순간”이라며 “먼지 속에 보관했던 이런 자료들을 다시 찾아 읽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해외 기독인들 조명… ‘당신들이 계셔서 행복했습니다’ 책 낸 김경남 목사
입력 2016-03-06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