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봄비, 봄

입력 2016-03-06 17:39

김남주 시인은 아들 이름을 김토일이라고 지었다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만이라도 노동자들이 온전히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노동자 해방의 염원을 담았다고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지난 5일은 경칩이었다. 추위와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을 견디기 위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절기이니 이제 곧 추위와 배고픔은 물러가고 바야흐로 만화방창의 계절 봄이 올 것이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 종일 봄비 오는 소리를 음악처럼 들었다. 음악처럼 들으며 생각했다. 얼어 죽지 않았다면 굶어 죽지 않았다면 동면에서 깬 개구리들도 저 봄비 소리를 듣고 있을 거라고. 음악 같은 봄비 소리를 들으며 다시 시작되는 자신의 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을 거라고.

바흐는 지저귀는 새처럼 되지 않으려면 영혼으로부터 연주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깨는 뭉쳐서 뻐근하고 머리는 쪼개질 듯 쑤시고 마음은 너덜너덜. 할 일은 산더미인데 일 처리는 굼벵이처럼 느리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 이 굼벵아, 뭐하니? 걸어와도 다 왔겠다. 얼른 굴러서 와라.’ 이런 환청에 시달리는 것만 같았던 일주일. 자학과 피학 사이에서 피곤했던 일주일.

매일 밤 스스로에게 지저귀는 새처럼 되지 않으려면 영혼을 회복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다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들었던 일주일을 위로하는 봄비가 내린다. 다행히 봄비는 노동자에게도 고용주에게도 개구리에게도 공평하게 내린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도 있지만 긴 겨울의 추위와 배고픔을 잘 버텨낸 개구리 만세다!

우리는 오늘도 버틴다. 불행하게 얼어 죽지도 굶어 죽지도 않기 위해서. 앵무새처럼 지저귀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인간답게 사는 노동자 해방의 염원을 담아 외아들의 이름을 ‘김토일’이라고 지은 시인을 생각하는 봄이다.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