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 이하 방백 수령에 이르기까지 교만과 사치와 음란한 일을 일삼으니 팔로는 어육이 되고, 만민은 도탄에 허덕이도다. …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라,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가 망하도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제 몸만을 위하고 국녹을 도적질하는 것을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1894년 갑오농민혁명의 주체였던 농민군이 탐관오리를 향해 쓴 포고문의 일부이다.
농민군의 초기 주된 무기는 돌멩이, 괭이, 죽창이었다. ‘혁명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남주(1946∼1994)는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에서 ‘대나무로 창을 깎아/ 죽창이라 불렀고 무기라 불렀고/ 괭이와 죽창과 돌멩이로 단결하여/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악독한 부호의 다리를 꺾어/ 밥과 땅과 자유를 쟁취했다’라고 했다.
농민군은 같은 해 3월 사냥꾼들로부터 총기를 수집했고 4월 황토현에서 관군을 상대로 치른 최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고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이 똑같다는 것이 갑오농민혁명의 정신이다. 하지만 농민군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듬해 4월 교수형을 당하고 봉기는 희생자 30만∼40만명을 남긴 채 끝이 났다.
100여년 전 농민군은 무도한 지배층 비판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런 민의 표출을 제도화한 것이 선거다. 선거권 확대가 민주주의 발전과 궤적을 같이하는 이유다. 영국의 경우 보통선거권 확립에만 100여년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후인 1948년 선거가 처음 실시됐다.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투표였다. 모든 성인 남녀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미국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에 대해 “서로를 죽이지 않고 갈등을 처리할 수 있는 체제”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선거를 ‘종이로 만든 돌(Paper Stones)’에 비유했다. 지금 우리는 돌이나 죽창을 들지 않고도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 4·13 국회의원 총선거 후보가 드러나고 있다. ‘종이 돌’을 어디로 던질지 고민할 시간이다.
강주화 차장 rula@kmib.co.kr
[한마당-강주화] 종이로 만든 돌
입력 2016-03-06 17:39